한국일보

용서의 도

2016-02-01 (월) 김길홍(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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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제자중 하나가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하나?를 스승에게 물었을 때 가르쳐 주신 기도를 ‘주기도문’이라 하여 기독교인들은 그 기도를 외워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찬송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 기도문 마지막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 한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이다. 그냥 용서 해 주옵시고 라 하면 좋은데... 거기에 단서가 붙었다. 여기가 핵심이다.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용서 하실 수 없다는 뜻이 들어있는 것이다.

문학 작품에 앙드레 지드의 ‘배덕자’란 소설이 있다. 남자 주인공이 병에 걸려 날씨가 좋은 지역을 골라 다니며 아내가 갖은 고생을 하며 간호를 하여 남편이 낫게 된다. 그런데 그 아내는 결국 남편의 병에 걸려 눕는다. 병이 다 나은 남편은 누워 있는 아내를 놔두고 다른 여자와 놀아난다. 바로 배덕자이다.


이러한 배덕을 당할 때 느끼는 감정은 정말 묘할 것이다. 아니 분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용서 하라 하신다. 그러면서 1만 달란트(일년 품삯) 빚을 탕감 받은 자가 100데나리온(하루 품삯)의 빚 진자를 탕감해 줄 수 없느냐?는 역설이다. 하나님께는 실정법만이 아니고 생각만 잘못해도 죄가 된다. 남의 물건을 욕심만 부려도 도덕질과 같다고 규정돼 있다.

필자는 최근 이 말이 너무 어려워 몸부림치고 있다. 배신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이민 사회에서 이 기도가 적용되려면 특별한 은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 제 힘으로는 할 수 없사오니 저에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부어 주옵소서!” 라고... 아무쪼록 피차 빠지기 쉬운 배덕의 숲에서 빠져 나와 신뢰의 길을 찾아야 겠다. 그 길만이 우리가 서야 할 땅이 아닐까.

<김길홍(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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