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언어의 포장

2016-01-30 (토) 고경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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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사람의 기쁨을 더 크게 하려고 정성을 들여 선물을 포장한다. 기업들은 상품의 가치를 높이거나 소비자의 눈길을 끌기 위하여 포장을 한다. 포장이란 받는 사람을 아끼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러한 포장을 악용하기도 한다. 푸짐한 포장에 끌려 구매한 상품을 뜯어보면 초라한 내용물에 실망하기도 한다. 선물과 상품처럼 언어도 포장을 한다. 언어의 포장도 듣는 사람을 아끼는 마음의 표현이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아름다운 단어를 고르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언어로 포장한다.

그런데 이런 언어의 포장도 악용한다. 뜯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선물과 상품의 포장과는 달리 언어의 포장은 그 악용의 진의를 파악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다. 그 피해가 커서 사기를 당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고 좌절하기도 한다.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을 권고하고 있다. 정년이 되었거나 정년이 다가오는 직원들에게 더 나은 조건으로 조기 퇴직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면 좋겠다. 그런데 모 기업에서는 갓 입사한 청년직원까지 희망퇴직을 권고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직원들은 회사 내에서 자존심이 상하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책상이나 의자를 치워버리거나 업무와 상관없는 부서로 보내는 식이다. 이것은 부당해고의 ‘부당’을 희망퇴직의 ‘희망’이란 언어로 포장하는 짓이다.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정권에서 ‘대운하’가 명분을 얻지 못하자 ‘4대강 사업’으로 포장하였다. ‘공기업 민영화’가 여론에 부딪히자 ‘공기업 선진화’로 포장하였다. 그 이후 국회 선진화법 등 ‘선진화’라는 언어는 정계에 자주 등장하였다.

정치인들은 언어 포장의 마술사이다. 각종 정책을 창조경제, 민생안정, 반값등록금, 청년 배당금, 전역 퇴직금, 정직한 사람 등 화려한 포장지로 싼다. 국민들은 포장지를 뜯어보고도 혼란스럽다. 포장속 내용물이 자신에게 약이 되는 것인지 독이 되는 것인지.
특히 선거철이면 포장에 싸인 수많은 공약과 정책들이 미세 먼지처럼 대기에 가득할 것이고 국민들은 더욱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정론직필의 언론과 사고가 바른 학자들은 국민들을 위하여 먼지 같은 언어의 포장을 걸러내고 실질적 내용물을 추려주는 정의로운 마스크가 되어야 한다.

<고경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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