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헤세의 ‘우정(友情)’

2016-01-23 (토) 전태원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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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을 헤매면 이상하여라!/ 숲이며 돌은 저마다 외로움에 잠기고 / 나무도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다 혼자다/ 나의 인생이 아직 밝던 시절엔/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했건만/ 이제는 안개가 내리어/ 보이는 사람 하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조용히 모든 것에서/ 사람을 떼어 놓는 그 어둠을/ 조금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참으로 현명하다 할 수는 없다/ 안개 속을 헤매면 이상하여라!/ 인생이란 고독한 것…/ 사람들은 서로 모르고 산다/ 모두가 혼자다.

194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르만 헤세(1877-1962)의 시다.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고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한 세상을 취한다는 것'과 같다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시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와는 조금 다르게 그 옛날의 작가들은 친구와의 우정도 작품만큼 소중하게 생각했던 모양인데 시로써 우정을 표현한 작가가 여럿 있다. 150편 이상이나 되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Sonnets)와 밀턴의 시 ‘Lycidas’ 테니슨경(卿)이 수년에 걸쳐 쓴 130편이 넘는 ‘In Memoriam A.H.H.’는 모두 다 한 친구를 위한 우정의 표현이었다고 하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4세 때부터 시를 쓴 독일의 천재 서정 시인이자 탁월한 소설가였으며 철두철미한 자유인이었던 헤세는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스위스로 귀화해 버린 방랑자이기도 했다. 그는 시인으로도 전 세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소설로도 유명하다.
프로이드(Freud)의 정신분석을 연구하여 데미안(Demian)을 쓴 것은 데미안을 그만큼 유명하게 만들었고, 많은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 주었다.

특히 ‘Demian’의 대목 중에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는 구절은 너무나도 유명하며 ‘데미안’을 고등학교와 대학 교양과목의 필독서로 삼았을 정도다. 최근에는 초등학생을 위한 ‘논술대비’ 명작 시리즈 중의 한 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헤세의 수많은 시 가운데서 가장 많이 애송되는 시가 ‘안개 속을’ 이고, 가장 사랑받는 소설이 ’데미안‘이다. 그는 특히 동양 사상에 매료되어 독일어로 번역된 도연명(陶淵明)을 애독했으며 35세에 ‘싯다르타(Siddhartha)'와 같은 훌륭한 소설을 썼다. 헤세처럼 작품도, 우정도 훌륭하게 지킨 사람은 드물 것이다.

친구를 잃더라도 그 우정은 잊지 않아야겠다고 하면 너무 역설적인지 모르지만, 나는 70년이란 긴 세월을 두고 지금까지도 단짝으로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있어 삶이 즐겁고 행복하다

죽어도 잊지 못할 그 이름 호광(浩光)... 그리고 50년을 한결같이 바로 그 친구와 함께 문필, 운홍, 심용, 인섭... 아, 친구들이 있는 그리운 고국, 언제나 보고 싶은 동무들! 그래서 계속 가고 싶은 조국이다.

<전태원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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