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름다운 승복’

2016-01-25 (월) 연창흠 논설위원
크게 작게
뉴욕한인회 ‘한 지붕 두 회장’ 분규사태는 불복이 낳은 결과다. 선관위가 한인회장을 뽑았다. 정상위도 또 다른 한인회장을 선출했다. 두 명의 회장이 탄생했다. 그들은 서로의 변칙과 반칙을 내세우며 결정에 따르지 않았다. 잘못된 수단을 정당화했다. 상대방은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을 공격하는 편싸움을 벌였다. 물리적 충돌도 빚어졌다. 법정소송으로까지 비화됐다. 수많은 한인들이 중재에 나섰다. 하지만 물거품이 됐다. 두 회장은 끝까지 대화, 타협과 승복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한 지붕 두 회장’이 마지막 한 판 승부를 벌였다. 맨하탄 지법에서 열린 한인회장 선거 무효소송 사건의 최종 심리에서다. 지난해 3월 당시 김민선 후보가 민승기 당선자와 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지 약 10개월 만이다. 이날 양측 변호인들은 최종 변론을 했다. 재판부는 이를 종합해 이날부터 늦어도 60일 이내에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심리종결 후 양측은 서로 이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직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선, 법원의 최종 판결로 승자와 패자가 나올 수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패자에겐 굴욕뿐이고 승자에게도 상처뿐이 아닐까 싶다. 또한, 둘 다 패자가 될 수도 있다. 두 회장 모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재선거를 하라는 판결을 말함이다. 이 외의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당사자들은 온통 승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반드시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한인들은 그렇지 않다. 승패보다는 승복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어느 누구라도 불복하면 진흙탕 싸움이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지붕 두 회장’의 당사자들은 더 이상 서로 다퉜다 할지라도 불복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판결이 나오더라도 그것까지 뒤집거나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또 행패를 부리면서까지 고집도 피우지 말아야 한다. 설사 좀 억울한 일이 있고 공정하지 못한 느낌이 들더라도 꼭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해서 절차, 과정과 결과를 무시한다면 한인사회에 또 다시 해를 끼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 지붕 두 회장’ 시대는 막을 내려야 한다. 양측 모두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일 때 가능한 일이다. 혹시 자신이 패하더라도 깨끗하게 인정해야 하는 이유다. 혼자든 둘이든 마찬가지다. 패자가 아름답게 승복하는 모습은 더 큰 가치를 위한 진정한 의미의 위대한 패배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패자의 승복은 ‘우리 모두가 하나’란 사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름다운 승복이 찬사를 받는 이유다. 그러니 더 이상은 핑계를 내 세우지 말고 이번만큼은 깔끔하게 인정하자는 얘기다. 그래야 한인사회에 아름답게 승복하는 문화가 뿌리를 내릴 수 있다. 화합하는 한인사회를 만들자는 의미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동안 한인사회 분열의 책임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지 않겠는가?

‘위대한 패배자’를 저술한 독일의 볼프 슈나이더는 “우리의 패배로 인해 승리만을 추구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는 추악한 세상을 그나마 참을만한 곳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고 암시하며 오로지 정상을 오르는 데만 혈안이 된 사람보다는 승복할 줄 알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더 호감이 간다고 말한다.
그는 “좋은 패배자란 느긋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즐겁게 웃지만, 승자는 음흉하게 웃는다. 때문에 우리는 깨끗하게 승복할 줄 아는 아름다운 패배를 배워야 한다”고 당부한다.

‘한 지붕 두 회장’의 법정판결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오는 3월 중순 까지는 판결이 내려질 예정이다. 이제 두 회장은 더 이상 승리자만을 꿈꾸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깨끗하게 승복할 줄 아는 아름다운 패배를 배워야 한다. 아름다운 승복이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것은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인들의 마지막 부탁이 ‘아름다운 승복’임도 잊지 말아야 한다.

<연창흠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