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은 상대성이다

2016-01-23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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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1905년과 1915년에 각각 발표한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은 물리과학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물리학자들에 따르면 상대성이론은 단순한 자연법칙이 아니고 일종의 사고체계라 보기도 한다. 여기서 우주의 자연법칙과 우리의 마음속에 담겨 있는 느낌의 사고체계와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엿볼 수 있다.

복잡한 상대성이론을 간단히 이해하려면 마음의 시간과 물리적시간의 변동됨이 상대적임을 알면 된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애인과의 데이트는 하루 종일 해도 1초가 지난 것처럼 우리의 사고체계에선 빨리 지난다. 반면, 지극히 혐오스러워 하는 사람과의 동행은 1초가 하루 같은 지루함을 갖게 한다. 이것이 바로 상대성이론이다.

행복의 지수도 마찬가지다. 다분히 상대적이다. 아주 쉬운 표현으로 우리들의 외적 조건에 관계없이 사고체계인 마음이 만족스럽다면 행복한 거다. 반대로 외적조건은 아주 좋은데도 사고체계인 마음에 만족함이 없다면 불행한 거다. 상대적으로 하나의 마음에 만족과 불만족의 비율이 어느 편에 더 있냐에 따라 행과 불행이 갈린다.


지난 18일 한국일보는 조사기관을 통해 한국과 일본, 덴마크와 브라질 4개국의 2,500명을 대상으로 행복지수를 발표한바 있다. 한국의 경우 은퇴 후 60대 이상의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평균에 훨씬 못 미치게 나왔다. 결국 한국인은 나이가 들수록 불행한, 한국인의 뒤틀린 행복이 결과로 나타났다. 불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덴마크는 20대의 행복감이 40-50대를 지나며 감소했다가 60대 이후 상승한다. 일본은 20대에 가장 낮았던 행복감이 60대에서 가장 높아진다. 브라질은 20대에서 행복감이 점점 낮아지다 60대에서 회복된다. 한국은 나이가 들수록 불행함을 나타냈다. 서울대 이재영교수는 한국인 노인자살률 세계최고가 이를 증명해준다고 했다.

삶의 질에서 행복의 도는 나이가 들수록 수치를 더해 가야 하는데 나이가 많을수록 불행해짐을 느낀다는 한국의 노인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아니, 한국보다도 미주에 이민 와 살고 있는 한국노인들은 또 어떤 삶의 만족도로 살아가는지 궁금하다. 나이 80, 90이 되어도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는 분도 주위엔 있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노인들의 행복과 불행에도 상대성이론을 접합해 볼 수 있을까. 인생의 희로애락(喜怒愛樂)을 무수히 경험한 그분들이 아닌가. 자식들을 다 키워 출가 보낸 후 맞이하는 황혼의 시기에 노인들은 어떤 행복감을 갖고 살아가야 하나. 그래도 건강하고 부부간에 별 탈 없이 조그마한 여유를 가지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얼마 전 노인복지기관에 가서 친구와 같이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운영되는데 하루에 약 250명 정도의 노인들이 와서 중식을 해결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70대가 가장 많고 60대와 80대가 그 다음인 것 같았다. 이들은 여기서 식사를 하고 여흥을 즐기며 친구도 사귄다. 황혼의 밋밋함을 엿본 것 같았다.

상대성이론은 행과 불행에만 적용되는 물리세계와 사고체계는 아닌 듯싶다. 만사(萬事)에 적용되는 우주와 우리 마음의 법칙은 아닐는지. 나이가 들수록 불행해 지지 않으려면 비움의 비율이 상대성에 적용되어야 할 것 같다. 마음을 비우는 비율이 마음을 쓰는 비율보다 더 많아진다면 그만큼 불만족과 불행도 비워지지 않을까.

허허스레 살아가는 삶이 우리의 모습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으련만. 맑고 향기로운 삶을 살다간 법정스님은 마음을 비우라 했다. 비움보다 더 좋은 건 비운다는 마음까지도 비워버리는 것. 어느덧 새해도 한 달을 채워가고 있다. 세월 정말 빠르다. 남은 세월만큼 행복비율이 우리를 지배했으면 좋겠다. 행복은 상대성이다.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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