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쯔위 사태’로 본 국기

2016-01-22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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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연관된 때아닌 국기 분쟁에 중국과 대만이 대립의 각을 세우고 있다.
다국적 멤버가 모인 한국의 걸그룹 트와이스의 대만출신 멤버 쯔위가 지난 해 11월 MBC TV ‘마이 리틀 텔레비전 ‘ 인터넷방송에서 출신국가를 밝히면서 대만 국기 ‘청천백일만지홍기’를 흔들었다. 이에 중국 작곡가 황안이 나서서 쯔위가 ‘대만 독립운동가’라며 여론을 자극했고 중국 네티즌들은 ‘중국에서 돈 벌고 대만 독립을 원한다’며 비난했다. 고작 16세인 쯔위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공개사과하고 대만의 민진당은 이를 대만의 탄압으로 해석, 대만 독립 논쟁의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소속사 JYP 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은 “ 쯔위의 모든 중국 활동을 중단하겠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며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 이는 다시 대만 네티즌을 격앙시켰고 대만의 인권변호사는 JYP를 검찰에 고소하는 가하면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차이잉원이 대만의 첫 여성총통으로 당선된 것은 쯔위의 국기 논란 득을 봤다는 등 별별 이야기까지 떠돌고 있다.

한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가 걸린 사안은 늘 이렇게 민감하다. 보통 그 나라가 전쟁 등의 국난에 처했거나 경제적 위기가 닥쳤을 때 애국주의 바람이 불고 국기는 잘 팔려 나간다.


미국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 국민보다 성조기를 자랑스러워하고 성조기 패션을 애용한다. 특히 9.11이후 전 미국에 애국 바람이 불며 성조기는 어디에나 펄럭거렸다. 레드와 블루, 별과 스트라이프 패턴을 이용한 모자, 수영복, 티셔츠, 드레스 등 성조기 패션을 착용한 비욘세, 사라 제시카 파커, 할리 베리, 저스틴 비버, 레이디 가가 등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신성한 태극기를 이용한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한국, 일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는 국기법이 있을 정도다. 대한민국 국기법 제10조, 11조에 의하면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게 국기를 관리하여야 하고 혹 깃면에 구멍을 내거나 절단하는 등 훼손하여 사용하는 경우 법에 저촉되었다.

그런데 2010년 월드컵 이후 태극기 패션은 밖으로 나왔다. 한국이 16강, 8강, 4강으로 올라가면서 사람들은 태극기를 리폼하여 개성에 따라 매고 두르고 월드컵을 치렀다. 태극기가 이렇게 우리와 가까워졌다고는 하나 불과 얼마 전에도 뉴저지 버겐카운티에서 태극기 훼손 논란이 일었었다.

지난 1월 11일 버겐카운티가 ‘미주한인의 날’행사를 개최하면서 참석자들에게 배포한 안내지에 게재된 태극기 문양이 2년 전 한인 2세단체가 작성했다가 논란이 되자 폐기했던 디자인으로 드러났었다. 버겐카운티의 한 관계자는 한국과 미국이 화합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태극기와 성조기가 합쳐진 디자인을 찾던 중 한 포털사이트에서 다운 받아 사용했던 것이다.

이번 ‘쯔위 사태’로 많은 이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9인조 다국적 그룹의 멤버 3명이 일본, 1명이 대만 출신으로 2015년 데뷔한 신생 그룹은 활동 초반부터 발목이 잡혔다. 보수적 국수주의, 편견, 아집이라고 하기에는 사안이 커져버렸다. 방송국제작진이나 작가, JYP는 다국적 걸그룹을 홍보하기 앞서 중국과 대만 관계를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대만 출신인 10대 소녀가 국적인 나라의 국기를 든 것은 당연하지만 대만 연예계가 아니라 중국 진출이라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 놀랍기까지 하다. 이는 우리에게 욱일승천기, 북한인공기처럼 매국노, 국가보안법 위반 등이 뒤따라오는 일이다.
그러나 국기는 국기일뿐 사람이 더 중요한데, 어린 소녀가 국적을 나타내는 국기 한번 흔들었다가 정치외교적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좋아하는 노래도 못하고 세상이, 사람이 얼마나 무서울까.

이번 사태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해외진출을 하려한다면 그 나라의 주권, 문화, 역사, 국민감정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우쳐 준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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