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호질기의(護疾忌醫)’

2016-01-18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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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시대 때 명의 진월인. 뛰어난 의술로 편작의 화신이라 불렸다. 지금도 본명보다는 편작이란 별명이 더 익숙한 인물이다. 어느 날 그가 채나라 환공을 만났다. 얼굴을 보더니 피부에 병증이 있으니 얼른 치료할 것을 권한다. 하지만 환공은 병이 없다며 그를 돌려보낸다. 열흘 후 편작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엔 걱정스런 눈빛으로 말한다. “병증이 근육에 이르렀으니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장차 깊은 병이 될 것”이라고. 환공은 역시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의사들은 병이 없는 사람을 고치기 좋아 한다”고 비웃는다. 다시 열흘이 흘렀다. 편작은 환공에게 “병증이 내장에 이르렀으니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위급한 상황이 된다”고 말한다. 환공은 그저 먼 산만 쳐다볼 뿐이었다. 또 다시 열흘이 지났다. 그는 환공을 바라만 보고 그냥 말없이 돌아섰다. 환공이 사람을 보내 그 까닭을 물었다.

편작은 “병이 이미 골수에 이르러,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때까지도 환공은 그의 말을 믿지 못하고 웃음만 터뜨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환공은 갑자기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편작의 말을 믿게 됐지만 때는 이미 늦을 터였다. 환공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중국 한비자의 ‘유로편에 나오는 유명한 고사다. 송나라 주돈이가 지은 주자통서의 과편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요즘 사람들은 마치 병을 감싸고 치료를 꺼리는 것처럼 잘못이 있어도 다른 사람이 바로잡아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찌 몸을 망치는 데도 깨닫지 못 하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주변의 충고를 애써 무시하다 결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는 공통적인 이야기다. 훗날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통해 ‘호질기의(護疾忌醫)’란 사자성어를 만들어 냈다. 병을 숨기고 의원을 꺼린다는 뜻이다. 자신의 결점을 감추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지적해도 인정하지 않는 행동을 꼬집는 말이다.

편작의 고사는 무려 3,000년이나 묵은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똥고집(?)을 부리다 낭패를 보는 사람들은 수두룩하다.

보통사람들은 스스로의 잘못은 감추려 한다. 그렇지만 ‘충고’나 ‘지적’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후의 행동이다. 얼마만큼 반성하고 뉘우치느냐이다. 잘못을 알고 난 뒤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잘못을 철저하게 반성하는 것. 똑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 그런 행동은 매우 훌륭한 태도라 하겠다.

공자말씀처럼 잘못을 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잘못을 하고서도 고치지 않는 것이 바로 진짜 잘못이란 얘기다.
흔히 잘못에 대한 ‘충고’나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기분 상했다고 받아들이지 않고, 외면하거나 무시를 하면 충고자와의 관계 단절은 물론 실패와 손해의 인생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한인사회에는 아직도 자신만이 옳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자기 말만 앞세운다. 눈은 감고 귀는 닫는다. 스스로의 잘못은 감추려 한다. 인정하지 않고 꾸미려 할뿐이다. 잘못이 드러나도 개의치 않는다. 변명으로 일관한다. 나 몰라다. 그러니 반성하고 뉘우치는 법도 없다. 남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니 충고는 자신에 대한 무시와 모욕일 뿐이라 생각한다. 분명 자신의 잘못을 알면서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 편작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환공처럼 말이다.

연초부터 뉴욕한인회가 또 다시 논란에 빠져들고 있다. 뉴욕한인회관 재개발을 놓고 민승기측 뉴욕한인회와 역대한인회장단이 또 맞붙었다. 뉴욕한인회 ‘한 지붕 두 회장’ 분규사태의 주역들이다. 그들은 여태껏 수많은 충고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끼리끼리 그 모습 그대로다. 해를 넘겨서도 고름을 짜내고 참회하며 과오를 뉘우치는 태도는커녕 병을 감추려는 모습을 보일 뿐이다. 참으로 ‘호질기의’의 참 뜻을 실감나게 하니 씁쓸할 따름이다.

오늘은, 유독 진실한 사람이 그리운 날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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