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이를 먹는다는 것!’

2016-01-11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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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다. 나이를 먹는다. 또 한 살을 더한다. 어김없다 배달사고도 없다. 쉰 중턱의 나이가 무겁다. 한 살씩 더할 때마다 더 뒤를 돌아본다. 지난 나의 흔적을 자주 찾는다. 어떻게 살았는지 묻고 또 묻는다.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본다. 그렇게 어제를 뒤돌아볼 수 있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다. 더 살고 싶은 마음의 고개 짓일지도 모른다. 세월이 지날수록 더 심해지는 증상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혹자는 ‘자기 고집만 늘이다가 다시 갓난애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불교적 용어로 표현하면 ‘사상(四相)만 높이다가 다시 제자리로 윤회(輪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사상은 인간이 모르고 살아가는 마음이자 모습이다.

불교에서 사상은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등이다. 하지만 사상은 일률적이지 않다. <금강경> 해설자들마다 차이가 있다. 그래서 육조 해능대사의 해설을 기준으로 했다.


우선 아상이란 나의 가진 것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교만심, 우월심이다. 자기가 제일이라는 모습이다. 우리 주변에서 재산, 학문, 가문, 권력 등을 믿고 자기도취에 빠진 한인들이다. 그들은 환경만 믿고 남을 업신여긴다. 배경을 내세우며 자랑만 한다. 은근히 목에 힘을 주고 나보다 못한 이들을 낮추어 본다. 이들의 행위야 말로 바로 아상이 일으키는 죄업인 것이다.

인상은 나의 지견과 너의 지견은 다르다는 마음이다. 곧 차별심을 의미한다. 나와 남을 나누어 보는 모습인 게다. 한인 중에서도 자기에 견주어 남을 비교, 차별이나 경명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뭐 좀 안다고 상대방을 비웃는 한인. 좀 더 배웠다고 스스로를 높이는 한인. 남이 못하는 일을 했다고 우쭐거리는 한인 등등이다. 무엇보다 좋을 일을 했다고 생색내는 한인들은 수두룩하다. 존경받을 행위를 했더라도 보상심리 같은 마음이 일어나면 인상의 죄업에 사로잡힌 것임을 모르기 때문 일게다.
중생상은 잘한 것은 내 탓이다. 못한 것은 조상 탓이다. 남의 탓으로 미루는 모습이 중생상이다. 뉴욕한인회 ‘한 지붕 두 회장’ 분규사태는 누구 탓인가? 아직까지 '내 탓‘이라며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저 서로의 탓일 뿐이다. 중생상 때문이다. 임원들에게 잘못은 떠넘기는 단체장들도 한 둘이 아니다. 주인이나 종업원이 서로 탓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혼하는 부부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들은 잘못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는 죄업. 그것이 중생상인 것이다.

수자상은 분별하는 마음, 현실과 영원을 가르는 마음, 한 세상 살면 그만이지 하는 마음, 스스로의 영원성을 몰각한 마음이라 하겠다. 흔히 우리 주변에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는 한인들이 이런 부류다. 그들은 물질적, 정신적으로 얻을 것이 있는 자리는 주저하지 않고 쫓아다닌다. 이득이 없을 때는 친척, 친구, 지인 등도 아무런 소용없다. 언제 봤냐며 발길을 돌리기 일쑤다. 이처럼 이기심에 따른 한인들의 행동은 수자상에 기인한다.

한인들은 그동안 일상생활 속에서 매 순간마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등 사상에 빠져 허우적대며 살아왔다. 사람에 따라 정도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이 사상에 얽히고설켜 죄업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는 한인들이 사상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참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개인, 가정 더 나아가 한인사회서 만연되고 있는 각종 병폐를 점점 퇴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한인사회엔 ‘어른이 없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사상이란 죄업 속에서 허덕이는 ‘애늙은이’와 ‘철부지 어른’들이 넘쳐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 나이 듦은 철듦이다. 어른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올바로 나이 값을 하는 것이다. 새해부터는 책임지는 행동으로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나이 값을 제대로 하는 한인 어른들이 넘쳐 나길 기대해본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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