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고/ 예린이를 위한 제도

2016-01-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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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은 수년간 친부에게 가정 학대를 받아온 예린이 뉴스에 들썩였다. 친부와 동거녀로부터 지속적인 학대를 당한 5학년 예린이는 발견당시 키 1m20cm에 몸무게 16kg. 만11세 여아의 몸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야위어 있어 온 나라를 경악케 했다.

몸에 난 상처보다 더 심각한 것은 마음의 상처이다. 예린이가 소아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시 그린 크리스마스 트리는 큰 A8용지에 비해 엄지손가락만하다.

그 아이가 그린 집도 마찬가지다. 작은 그림을 그리는 건 지속적인 학대로 인해 압박을 당한 심리 상태와 정서적인 폭이 제한되어 갇혀버린 마음을 반영한단다. 게다가 그 집에 누구랑 사냐는 질문에 엄마, 아빠, 가족 개념이 사라져 고양이랑 산다는 답이다. 예린이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될 때까지 어떻게 발견되지 못했단 말인가?


뉴욕가정상담소는 매년 연말에 싱글맘 및 장기주택프로그램 소속 여성들과 아이들을 위해 연말 파티를 연다. 올해도 어머니와 아이들은 스시 셰프 자원봉사자들이 제공해 주는 고급 스시와 우동 등 정성껏 차린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캐롤을 부르고 자원봉사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선물을 받았다.

엄마를 크리스마스 트리로 장식하는 게임에서는 아이들이 엄마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크리스마스 장식을 달아 어머니와 아이들의 신체적인 접촉을 도모했다.

각종 게임을 하는 아이들은 마냥 밝은 모습이었다. 그 중 상담소의 저소득층을 위한 호돌이 방과후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보는 학생의 변함없는 밝은 모습에 물어보니 담당 카운슬러 말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엄마와의 관계가 좋으면 아이들의 표정이 밝고 아무리 경제적으로는 부유해도 부모와의 관계가 안 좋으면 아이들의 표정이 어둡다고 한다.

한번 생각해 볼 대목이다. 임대주택프로그램 여성의 대부분은 가정 폭력 피해 여성들이다. 전 남편과 어떻게 헤어졌던 어렵게 상담소의 도움으로 새 생활을 시작해 아이들만은 밝게 건강히 키우겠다는 집념이 강한 분들이 많다. 속으로는 어떨지 모르나 겉으로는 항상 웃으시며 아이들을 보는 엄마의 모습은 사랑과 애틋함으로 가득 찼다.
엄마의 마음이 그러니 아이들이 밝을 수밖에 없다.

이런 여성들이 용기를 내어 아이들을 데리고 전 남편의 폭행과 학대를 떠날 수 있는 것은 이들을 위한 제도이다. 미국에는 여성보호법이 발달되어 보호명령, 범죄피해보상금이 있어 가해자로 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보상도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지원금으로 운영되는 셸터, 장기임대주택프로그램이 있어 집을 나올 경우 안전주거지도 마련된다. 또 불법체류자의 경우에도 가정폭력피해자는 변호사의 도움으로 체류비자를 받을 수 있다. 아동법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예린이가 미국에 있었다면 학교에서의 무단결석, 몸에 난 상처만 보고도 아동복지기관에 신고 되고 부모 친권이 제한되어 일찌감치 아버지의 학대로부터 보호받았을 것이다. 아동학대 조기 발견 체제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뒤늦게나마 장기결석 아동 전수조사를 한다고 한다. 예린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 학대와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보호 및 자립을 위한 한국사회의 관심과 제도가 신속하게 장착된다면 앞으로 예린이와 같은 아동과 어머니들은 밝은 얼굴로 연말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김봄시내 (뉴욕가정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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