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홈 콘서트

2016-01-02 (토) 김태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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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서 음악회를 한다면 대개는 어마어마한 대저택에서 유명 음악인이나 인사들을 초대해 벌리는 음악잔치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형편이 그렇지 못한 우리집에서도 이태에 한번쯤은 홈 콘서트를 열고 있다. 그것도 전문 음악인이 아닌 우리네 형편에서…

그 시작은 이랬다.
두 아이들이 음악 쪽에 재능을 보이는 것 같아 아내는 열성적으로 그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매일 아이들을 데리고 맨하탄의 선생님을 찾아 다녔는데 그러다보니 음악과 관련된 사람들, 특히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어린 학생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런데 매년 추수감사절만 되면 이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객지에서 긴긴 연휴를 혼자 보내는 것이 안타까워 보였다. 그래서 한번은 그중 몇몇을 집으로 초대하여 터키도 함께 굽고 더불어 이런저런 음악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이런 모임이 하나의 작은 음악회로 발전이 되었고 이 작은 음악회가 해를 거듭하다보니 이제는 어느덧 추수감사절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후 아이들이 장성하여 집을 떠나버리자 감사절만 되면 그토록 떠들썩하던 집안은 조용하고 아이들이 썼던 악기만 댕그라니 남아서 우리 부부는 더더욱 쓸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내 방에서 첼로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깜짝놀라 쫓아 들어가 보니 아내가 그 악기를 꺼내들고 활을 저어보고 있었다.

“여보, 차라리 이 첼로를 내가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아내의 뜻하지 않은 제안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늦게 시작한 첼로에 아내는 흠뻑 빠져 매일매일 악기를 손에서 놓지를 않는 것이다.

나는 염려가 됐으나 아내는 오히려 스트레스도 풀리고 몸도 더 거뜬해진다고 즐거워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이제는 옛날 추수감사절처럼 가까운 친지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이런 대견한 모습을 보여드리게 된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현역으로 활동을 하다가 은퇴하여 집안에 틀어박혀 칩거를 하다보면 우선 생체리듬이 깨져 여러 가지 이상현상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은퇴 후를 설계할 때에는 노년을 얼마나 안락하게 지낼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기존의 생활리듬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어갈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Retire(은퇴)라는 말 자체가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아내는 나보다 훨씬 지혜롭고 건강한 사람인 것 같다. 아이들이 떠난 빈자리를 스스로 채워가며 본인도 리듬을 잃지 않고 더불어 집안도 항상 팽팽한 활력을 유지 할 수가 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여생인가.

<김태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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