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희망이 다가온다

2015-12-30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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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전에 ‘인생이란 백마가 달리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는 것처럼 삽시에 지나간다’는 말이 있다. 이 표현처럼 세월은 참 빠르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세월을 붙잡고 더디게 가게 할 수 없고 세월이 기다려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한번 밖에 오지 않는 세월, 살아있는 동안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일이다. 그런데 과연 올 한해 우리 모두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는가.

연말에 접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2015년도 여느 해와 다름없이 마치 시지프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처럼 “노고만 줄기차게 되풀이 해오면서 앞뒤도 안보고 무작정 질주해온 나날이었다. 그러고도 항상 목마르고 허망하기만 한 해였다. 왜 좀 더 보란 듯 멋지게 살지 못하고 그런 날들을 보내왔나...” 자책감이 드는 것은 그들만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제33대 해리 트루만 대통령은 “나는 스스로를 위대한 인물로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위대해지고자 노력하는 동안만큼은 위대한 시간을 보냈다고 하였다. 과연 나는 그만큼 노력하는 을미년 한해를 보냈는가. 내가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게 살았는가에 대한 냉철한 질문이다. 기쁨과 행복은 바로 나 자신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해답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있다.


어느새 한해가 훌쩍 지나고 새해가 눈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오늘이 내 생애 최고의 날인 듯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서 흡족하게 살았는가. 그렇지 못했다면 또 다시 뼈저린 반성과 새로운 각오로 새해를 맞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모두 2015년 한해 놀라운 기적을 일구었다. 오늘, 이 순간이 어제, 그리고 바로 직전에 죽은 이가 그토록 원했던 날이고 순간이기 때문이다. ‘어지러운 세상일수록 늘 깨어있으라’고 한 법정스님의 메시지도 바로 이 순간의 중요성을 일깨운 말이다. 우리가 주어진 한순간 순간을 적당히 보내왔다면 자책해야 할 일이다. 새해에 또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독일인들은 충분히 생각하고 난 뒤에 뛰기 시작하지만 프랑스인은 일단 뛰고 난 후에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나 영국인은 뛰면서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벌판을 가로지르며 전속력으로 질주하다 보면 때로는 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의식은 옅어지고 무턱대고 앞으로 나아가기에만 급급해지기 쉽다. 그러다 보면 주변상황을 잘 살피지 못하고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더더욱 보기 어렵다.

그렇게 정신없이 뛰어온 나날들, 나 자신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고, 또 무엇이 잘못됐는지 정확히 파악해서 나에게 맞는 새해를 설계해 더 넓은 지평, 더 높은 내일의 산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숱한 위험과 공포 속에서 의연히 살아남은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최고의 기적이고 선물이다.

우리는 또 새해 새 희망, 미래를 밝고 아름답게 채색해줄 무지개를 향해 달리기 위한 발걸음을 한발 한발 내딛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가파른 세파를 헤치고 펼쳐지는 새해는 더욱 힘차고 활기찰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자연의 질긴 생명력에 못지않은 강한 자생력이 있다.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은 밝고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라고 하지 않았는가. 을미년 20015년이 아무리 어둡고 힘겨운 한해였어도 태양은 반드시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또 다시 다가오는 2016년 병신년(丙申年) 새해는 바로 희망이다.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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