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 해가 저물어간다

2015-12-26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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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어간다. 새해가 시작된다고 모두들 새 마음으로 한 해를 열어가자고 했던 게 언제였던가. 시간이 화살처럼 지나간다더니 1년이란 세월이 눈 깜빡할 찰나적인 순간에 지나간 것 같다. 1년 365일.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우린 이 한 해 동안 얼마나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살았는지 되짚어 볼만도 하다.

고통의 긴 시간을 가진 한 목사가 있다. 그는 지난 한 해가 악몽 같은 1년이었을 것 같다. 지난 5월에 교통사고를 당해 목뼈수술을 10시간이나 했다. 회복단계에 들어갔는데 이건 또 무슨 청천벽력이랴. 급성 췌장암에 걸려 긴급수술을 했다. 췌장암. 아주 무서운 암이다. 그래도 그는 지금 그의 생명이 살아 있음을 감사해 한다.

교통사고 후유증과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그는 일주일에 4-5일 정도는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맞는 고통과 아픔을 겪는다고 한다. 세상엔 왜 암 같은 병과 고통이 존재하는지. 그는 항암 치료를 모두 17번을 받아야 하는데 3번째 치료를 했단다. 그래도 그 목사는 동료목사들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절망보다는 희망을 전달한다.


암 진단을 받고 수술 후 고통을 당해보아야 암에 걸린 사람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알 텐데 그러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 목사의 고통도 그저 지나가는 말에 불과할 수도 있다. 평소 잘 알며 지내던 목사인지라 하루속히 쾌차되기를 기도해 본다. 또 한 사람이 있다. 소변에 혈이 섞여 나와 병원을 찾았던 친구다. 방광암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암은 초기단계였다. 수술은 경과가 좋았다. 그래도 암 수술이었는지라 수술시 투척했을 항암제를 통해 그도 지옥과 천국을 수십 번 오갔다고 한다. 수술 후에 이어지는 고통과 아픔은 그 혼자서 감내해야만 한다. 가족과 친구도 아픔에 마음으론 동참하지만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질 수는 없다. 그게 암이다.

그는 가족들이 마음 아파할 까봐 어머니와 형제, 자식에게까지도 알리지 않고 비밀에 붙인 채 암 극복을 위해 애쓰고 있단다. 그러며 암 같은 병이 가족 중 다른 사람에게는 발병하지 않고 자신에게 발병돼 홀로 고통 받게 됨을 오히려 감사해 한다고 전한다. 그러며 아플 때 자신의 곁에 아내가 있음이 너무나 고맙다고 한다.

지난 한 해 자신이 계획했던 일들에 차질이 있을 수 있다. 수익을 반밖에 올리지 못할 수 있다. 애인간의 애정전선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불필요한 오해로 친구와 동료들 사이의 관계가 악화됐을 수도 있다. 직장을 쫓겨날 수도 있고 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건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이 모든 것보다도 암 같은 악성종양이 자신의 몸속에 생성되지 않았다는 한 가지만으로도 우린 감사해 할 지난 한 해였다고 생각한다. 암으로 고통을 당해 본 사람들은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말로 다 표현 할 수가 없단다. 암 보다도 항암제와 항암치료가 사람을 더 죽인다고 한다. 타고난 육신에 불어 닥치는 고통. 극복해야 한다.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이 아니었어도 좋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이 세 가지만 잘 한 지난 한해였다면 그것 자체가 보람이요 가치 아닐까. 암 같은 병의 고통 없이 살아가는 인생들은 너무나 행복한 사람들이다. 행복 자제가 자신 속에 있는데도 행복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것이 생의 가치와 보람을 모르고 사는 것이다.

한 해가 저물어간다. 며칠 안 남았다. 지나온 것은 좋은 것만 기억하고 나쁜 것은 기억에서 사라지기를 바램하자. 그리고 자신이, 현재 살아있음을 감사해 하자. 생명 그 자체가 가치요 보람이기에 그렇다. 다시 시작되는 2016년이란 하얀 백지위에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채워 보는 값진 해와 고통 없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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