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의 본질

2015-12-23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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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만 헤세의 단편 중에는 ‘어거스터스’가 있다. 온갖 정성 끝에 태어난 어느 집의 아들 이름이 어거스터스였다. 그를 낳은 산모에게 나타난 한 노파가 원하는 소원을 묻자 그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아이가 되게 해달라고 원했다. 크면서 이 아이는 정말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그러나 받기만 하고 자라다 보니 이 아이는 매우 이기적이고 교만하게 되어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는 신세가 돼버렸다. 그에게 이 노파가 다시 나타나 그의 소원을 물어보았다. 그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인생의 행복은 사랑에 있고 사랑의 본질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데 있음을 말해주는 글이다. 연말이 되자 거리에는 일찍부터 구세군이 울리는 종소리가 우리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빨간색의 자선냄비는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이웃사랑을 우리 모두 실천하자고 일깨운다. 우리주변에는 생활이 어렵거나 병마에 시달리는 환자들, 힘든 처지의 독거노인들이 많이 있다. 이들을 위해 매년 연말이면 자선냄비가 미국이나 한국이나 뜨겁게 달아오른다.

불교 화엄경에 구슬로 엮여진 ‘안드라망’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구성원이 보석처럼 귀한 존재이며 제각각 서로에게 빛과 생명을 주는 구조속에 공존한다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우주속 삼라만상의 관계가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에 의해서만 조화를 이를 수 있다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25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성탄절이다. 이 날이 들어있는 12월은 나눔을 통해 이웃과 사랑을 주고받는 특별한 절기이다. 나눔은 물질만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처지의 이웃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예수사랑을 실천하는 곳은 많지 않아 보인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 올라온 실화 한편이 이 사실을 입증한다.

교인수 1만 명의 미국 대형교회에 새로 부임할 목사가 노숙인 차림으로 그 교회 주변을 어슬렁거렸으나 그 교회 교인중 그에게 와서 말을 건 사람은 세 명 뿐이었다. 드디어 부임한 이 목사가 교회로 들어가 맨 앞자리에 앉았다. 그는 예배위원들의 저지를 받고 겨우 뒷 자석에 착석한다.

드디어 광고시간에 목사부임 사실이 공표되며 이 목사가 강단에 올라가자 교인들은 모두 경악했다. 이날 목사는 “아침에 교인들을 봤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었다”면서 “세상에 교인들은 많다. 하지만 진정한 제자는 부족하다. 여러분은 언제 예수의 제자가 될 것인가”고 질타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말구유에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는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 목마른 이들에게 마실 것을 주고 병든 이들을 돌보는 일을 평생 업으로 삼았다. 그는 권좌에 앉아서 욕심을 채우거나 탐욕스레 움켜쥐고 살지 않았다. 본인의 선한 행적이 마치 나비효과처럼 온 세상에 행복으로 번져나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깨닫게 함이었을까. 그는 사랑을 베풀면 기쁨이 오고 행복감을 느낀다는 단순한 진리를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깊은 샘물을 퍼내면 퍼낼수록 맑은 물이 올라오듯이 삶은 나누면 나눌수록 더 풍성해진다. 불우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볼 때 오히려 내가 기쁨으로 풍성해지는 역설적 진리를 경험할 수 있다.

성탄절을 맞아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더 큰 기쁨이 생긴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 예수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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