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994년부터 2015년까지

2015-12-21 (월) 허병렬(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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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실은 사진은 옛것이네요.’ 맞다. 1994년 이 칼럼을 집필하기 시작했을 때의 것이다. 격주로 글을 싣겠다는 신문사의 제안이 있었을 때의 기쁨이 지금도 생생하다. 좋은 기회니까. 열심히 생각하면서 개성적인 글을 쓰자. 그 이후 22년 동안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다. 따라서 현재까지 개인 사정으로 글을 싣지 못한 예는 전연 없었다. 그렇다고 항상 좋은 글을 실었는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노력하였다’는 한 마디 뿐이다.

약속 중에서도 지키기 어려운 것은 자기와의 약속으로 안다. 혼자 만의 일이니까, 구차한 변명을 하기 쉽다. 설혹 약속을 어기더라도 자기 자신만이 알고 있을 뿐이라는 안이한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 도전하고 싶었다. 격주로 신문에 글을 싣는 일이, 나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고 생각하였다.

글을 쓰면서 달라진 것들이 있다. 예사로운 일에조차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일의 옳고 그른 판단을 쉽게 내리기 전에, 그 원인을 살피게 되었다. 사전을 자주 찾게 되었다. 여기저기서 다채로운 글을 찾아 읽게 되었으며, 자기나름의 좋은 글에 대한 정의를 내리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글을 쓰게 된 기회는, 나 자신을 글로서 닦아가는 계기가 된 것이다.


어떤 일을 맡게 되는 기회는, 성장의 길이 열렸다는 신호이다. ‘동생을 돌봐줘.’ ‘이 말을 한국말로 바꿔 줘.’ ‘밖에서 오는 전화를 받아 줘.’ ‘오늘 날씨를 알려 줘.’ ‘학교에서 공부한 것을 말해 봐.’ ‘내가 무엇을 도와줄까?’… 등등 어린이와의 대화는 그들이 생각하며, 일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물었다. ‘집에서 어떤 일을 맡고 있어요?’ 어린이들은 제각기 하고 있는 일을 말하였다. ‘나는 강아지 밥을 주어요.’ ‘나는 동생하고 같이 놀아요.’ ‘내 방 청소를 해요.’ ‘나는 밥상을 차려요.’ ‘쓰레기를 내다 버려요.’ ‘동생이 목욕하는 것을 도와요.’ ‘옆집 미국할머니가 우리집에 오시면, 엄마를 도와요.’ … 등등 어린이들이 맡은 집안 일도 가지가지였다. 이와 같은 일은, 어린이가 일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공헌할 수 있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이다.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집안 일은 하지 말고 항상 재미있게 놀면 좋겠다는 생각은, 그들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일을 하고 싶어한다. ‘엄마, 내가 돕겠어요.’ ‘선생님 심부름을 하고 싶어요.’ ‘아빠, 내가 돕겠어요.’어린이들의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의 성장을 돕는 길이다. 언제나 실컷 놀기만 하는 것이, 결코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방법이 아니다. 어린시절을 충분히 만족할 만큼 즐긴 사람만이, 건강한 성인이 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어린이시절을 실컷 즐긴다는 뜻은‘재미있게 일을 배우는 것’이 포함된다.

일은‘어떤 가치 창조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쓰는 활동’이라는 것이 사전적인 해석이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이나 미국에서 찾고 있는‘일’은 생활 경비를 염출할 수 있는 방법을 가리킨다. 그래서‘일이 없다’는 말이 심각하게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일을 창출하였다는 뉴스도 섞인다. 생활 주변의 정해진 일 이외에, 새롭게 일을 창안하였다는 소식은, 일거리도 생각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린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거리도 한정이 없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본인 자신의 약속을 지킨 일이다. 그것의 첫째는 이런저런 이유로 글을 싣지 못하는 일이 없었다. 둘째는 여러 사람의 관심사에 도전하고 싶었다. 셋째는 어느새 글쓰기가 하나의 일과가 되었다. 넷째는 글쓰기가 건강을 지켜주었고, 즐거움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은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기쁨이 있다. 끝맺음을 하면서 모든 일에 감사할 따름이다.

<허병렬(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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