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붉은 원숭이의 해!’

2015-12-21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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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은 같은 띠를 갖는다. 띠는 12지니 12년마다 같은 띠다. 같은 띠들은 성격이나 운명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띠에 대한 성격이나 운명 중 긍정적인 성질만 차용해서 믿기 때문이다. 물론, 띠가 선천적 성격을 결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띠와 성격이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다. 결국 스스로 생각하기 나름이 아닌가 싶다.

한인들은 띠를 갖고 삶을 영위한다. 무슨 띤지 누구나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나이를 띠로 곧잘 말한다. 그만큼 띠는 우리의 의식 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 전통관념 중의 하나다. 심지어 각자마다의 심성에 투영된 자신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다가오는 2016년 새해는 병신년(丙申年)이다. 병(丙)이 상징하는 색상을 붉은색. 신(申)이 상징하는 동물은 원숭이. 새해는 ‘붉은 원숭이 해’이다.


원숭이는 자식과 부부지간의 사랑이 극진하다, 사람 뺨칠 정도로 애정이 섬세하다. ‘중국 진나라 때의 일이다. 촉나라 정벌을 위해 여러 척의 배에 군사가 나뉘어 탔다. 그 중 한 병사가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았다. 그런데 그 어미 원숭이가 그 배를 100여리나 따라왔다. 하지만 슬피 울다가 지쳐 죽었다. 군사들이 어미 원숭이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 ‘마음이 몹시 슬프다’는 뜻인 ‘단장(斷腸)’이라는 말의 유래다. 원숭이가 지극한 모성애를 상징하는 이유다.

불교 문화권에서 원숭이는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동물로 여긴다. 중국의 고전 서유기의 내용을 보자. ‘손오공’이 불경을 구하러 가는 삼장법사를 도와 변신술 등으로 온갖 잡귀를 물리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처럼 사악한 기운을 물리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중국에서는 원숭이가 건강과 성공, 수호의 힘을 갖고 귀신을 쫓는 역할도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에서 큰 건물이나 사찰 등에 원숭이 상을 세워 두는 것도 이런 이유다.

원숭이는 장수의 상징이기도 하다. 흔히 회화나 도자기 등에 천도복숭아와 함께 원숭이가 소재로 등장한다. 천도복숭아는 한 번 열매를 맺는데 3000년이 걸린다는 상상의 과일로, 장수의 의미를 갖는다. 원숭이가 천도복숭아를 손에 들고 있거나, 먹고 있는 모습은 오래 살고 싶은 소망을 나타낸 것이다.

원숭이는 기호와 언어를 쓴다. 사회생활도 한다. 사람과 가장 많이 닮은 영장의 동물이다. 너무 사람 같기에 ‘간사스럽다’, ‘요망스럽다’는 등의 나쁜 이미지가 생겼다, 간사스러울 정도로 사람 흉내를 잘 내 기피동물로 여겨진 것이다.

아마도 띠를 말할 때 ‘원숭이띠’보다 ‘잔나비 띠’라고 하는 것도 이 같은 속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잔나비는 ‘동작이 날쌔고 빠르다’라는 우리말 ‘재다’와 ‘원숭이’를 뜻하는 ‘납’이란 명사가 합쳐져 생긴 말로, 원숭이를 의미하는 옛말이다. 송강 정철의 가사에 나타나듯 처음에는 ‘잰나비’로 불리다가 이후 ‘잔나비’로 변하게 된 것이다.

2015년이 저물고 있다. 딱 10일 남았다. 을미년(乙未年) 끝자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사회는 아직도 분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화해는커녕 다시금 삿대질이다. 또 다른 진흙탕 싸움을 예고할 뿐이다. 그만큼 한인들에게는 참 많이도 슬프고 고달픈 한 해였다. 누구든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심정이 아니었겠는가. 이젠, 한 해가 아쉬움만 남기고 지나간다. 그렇다고 실망하지 말자. 희망도 버리지 말자. 우리에겐 여전히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송구영신. 이제는 묵을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다. 2016년 병신년 새해에는 원숭이처럼 다재다능한 온 한인들의 능력이 하나로 모여 그동안 어려웠던 문제들이 하나하나 해결되는 살맛나는 한인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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