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900보의 로망

2015-12-19 (토) 김혜순(이중언어교사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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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에서 세금내고, 투표하기 시작한지 꼭 열 번째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전적으로 아이들의 권유에 따른 이사였다. ‘늙어서는 자식을 섬긴다’는 속설을 실증한 셈이다. 애들은 어미를 보러 오려면 꼭 건너야 했던 큰 다리 두 개를 건너지 않게 되어 좋아했다.

아무튼 나는 뉴욕의 물과 지하철을 마냥 아쉬워하며 좁아진 둥지에 적응해 갔고, 따분한 언덕 마을 포트리와도 서서히 낯을 익혀 갔다. 이제 보니 나의 일상 활은 도보로 겨우 900보 안팎을 넘지 않은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수퍼마켓, 약국, 잡화점, 우체국, 은행, 도서관 그리고 내가 가장 자주 드나드는 노인정이 모두 900보 안에 있다는 얘기다. 더 좋은 일이 있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없는 한, 나는 대개 노인정에 가서 운동도 하고 점심을 해결한다. 값은 2달러인데 식당에서 먹으면 열배 정도 지불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음식이 나올 때도 있다. 양식이지만, 나는 먹성이 좋아 늘 잘 먹는다.

이 노인정의 명칭은 ‘The Richard Nest Adult Activity Center’이다. 1981년 당시 포트리 시청 공무원이던 Nest씨가 장의사가 있던 지금의 노인정 건물을 구청에서 구입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 시작한 시니어 센터라고 한다. 그래서 이 노인정에 들어서면 이 양반의 웃고 있는 사진을 먼저 만나게 된다.


그의 미망인은 얼마 전까지도 선거 때가 되면 포트리 시장을 비롯해 시의원들과 노인정에 나타나 수다를 떨곤 했는데 최근에 세상을 떠났다. 작년 여름에는 뉴저지의 Booker 연방상원의원과 Pascrell 하원 의원이 노인정 표밭에 나타나 점심 시중을 드는 유세를 한 적도 있다.

이 노인정은 점심뿐 아니라 운동, 춤, 음악, 미술, 뜨개질 카드놀이, 토론 등등 다양한 취미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강사들은 은퇴한 전문가들이다. 나는 점심과 운동 그리고 가끔 토론 시간에 참가 하곤 한다.

토론 반은 매주 금요일 10시부터 한 시간 계속되는데 열 명 가량 모인다. 토론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Facilitator 두 분이 교대로 와서 토론을 진행한다. 논제는 대개 시사문제나 공통 관심사로 그 때 그 때 정해서 얘기를 하게 만든다. 나는 주로 입 다물고 듣는데 못 알아 듣기 일쑤다

한 번은 ‘지금까지 살아온 전 생애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만 빼고 모두 신나는 반응을 보였다. 제일 먼저 손을 든 할머니는 첫 남편과 이혼한 것이 자기 평생에 제일 잘한 일이었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에 대한 대꾸처럼 다른 할머니는 자기는 독일 태생인데 라틴계의 남자를 만나 결혼한 것이 생애 최선의 결정이었다며 고인을 그리워했다.

다음은 로어 액센트가 심한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중늙은이 아저씨는 러시아를 떠나 미국에 온 것이 자기 생애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단언해 모든 사람의 박수를 받았다. 석사학위를 세 개나 가지고 있다고 늘 자랑하던 전형적 유대인 할머니는 1950년대에 뉴욕 시립대학에서 공짜로 공부를 한 것이 두고두고 자랑스런 결정이었다고 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내세울게 전혀 없어 우거지상을 하고 있는데,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궁여지책으로 나는 ‘내가 택한 종교’라고 말했다. 즉각 무슨 종교? 하는 반문에 나는 ‘기독교’라고 답하자 사람들이 김빠진 얼굴로 나를 봤다.그날 토론이 끝난 후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생각한다. 한 평생 잘 한 일도 많고 잘 못한 일도 많은데 왜 그 때는 그 말 밖에 못했을까?

<김혜순(이중언어교사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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