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결혼 복? 남편 복(福)?

2015-12-15 (화) 조성내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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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어떤 사람이 빌 클린턴에게, 결혼이라는 것은, 열 명의 여자가 있다면, 이 중에서 가장 예쁘고, 총명하고, 건강하고, 부자이고, 하여튼 제일 좋은 여자를 골라서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결혼하지 않는 나머지 9명의 여자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는 70세이지만, 50세 정도로 젊어 보이는 K. 그녀의 남편은 많은 재산을 남겨놓고, 일 년 전에 암으로 죽었다. 그녀는 재혼하지 않고, 혼자 여생을 살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헌데 언니들이 재혼하라고 이 남자 저 남자를 소개해주겠다면서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고등학교 때, 그녀가 좋아했었던 남자 생각이 떠올랐다. 보스턴에 살고 있다. 남자에게 전화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 당신을 좋아했었는데, 남편은 죽고, 가끔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당신한테 전화를 했소이다.” 그랬더니 그 남자가 하는 말, “자기도 아직까지 총각이고, 이야기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인데, 참 잘 됐소. 그러면 서로 이야기할 상대자로서 만납시다.” 둘이는 만났다. 만나고 보니 정이 들었다. K가 “우리 결혼할까” 하고 가볍게 말을 끄집어냈더니, 남자가 아주 쉽게 오케이 하더란다. 다음 달에 결혼하기로 했다.

고등학교 때 좋아했었던 남자, 아직까지 총각이라니! 총각하고 재혼한다니! 참 결혼복도 많은 여자다.

이조시대에나 내가 어렸을 때는, 남편이 죽으면 과부는 절개를 지켰다. 과부는 재혼하지 않고 혼자서 생을 마감했었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 남편이 죽으면 주위사람들이 빨리 재혼하라고 성화를 부리고, 또 과부 자신도 은근히 재혼하고 싶어 한다.
결혼이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해서 결혼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나이 70이나 80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결혼 한번 해보지 못한 채 살고 있는 노처녀들이 더러 있다. 이런 것은 보면 결혼을 하려면 우선 ‘결혼 복’을 갖고 태어나야 하는 가 보다.

결혼한다고 해서 다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부부가 화목하게 살기 위해서는 결혼복 이외에 또 남편 복이 따로 있어야 할 것 같다.

어떤 여성은 젊었을 때 아주 미녀였었다. 박사학위도 받았고, 좋은 직장 얻어서 근무하고 있었는데도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그녀는, 어렸을 때 할머니로부터, “너는 ‘남편 복’이 없어야”라는 말을 가끔 들으면서 자랐다고 했다. 결혼을 두세 번 했었는데도 결혼 생활이 일 년도 못되어서 헤어지고 말았다. ‘남편 복’이 없다는 자기 운명에 지금은 체념해버리고, 혼자서 살고 있다.

남편들이여, 살아있을 때 맘껏 아내를 사랑해주시라. 죽은 후까지 아내를 묶어놓을 수는 없는 법이다. 죽기 전에 아내에 대한 모든 애착을 떨치어버리고, 죽은 후에는 아내를 해방시켜주시라. 아내가 결혼복과 남편복을 갖고 있다면 아내는 재혼할 테고, 그렇지 않으면 과부로 살 테고...

<조성내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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