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크리스마스 캐럴’

2015-12-14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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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지 않은 상쾌한 아침이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상큼하다. 햇살마저 따스하다. 어느 봄날처럼 화창하고 훈훈하다. 봄 같은 겨울 덕이다. 포근한 날씨. 무거운 외투, 두꺼운 방한복은 필요치 않다.

벙어리장갑, 목도리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겨울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겨울답지 않은 겨울 탓이다. 하늘 표정은 좋고 시야는 깨끗하다. 바깥 활동하기에 그만이다. 골프장은 신났다. 날씨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비즈니스는 날씨에 민감하다. 웃는 곳이 있는가 하면 울상 짓는 곳도 있다. 겨울추위 실종 효과다.

세월은 날씨와 상관없다. 그저 흘러간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뉴욕의 사계는 반복된다. 어느 덧 12월의 중턱. 가을가고 겨울이다. 제 모습은 아니지만 다시 찾아왔다.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시즌 역시 다가왔다.


12월이면 누구나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Christ)와 예배(Mass)가 합쳐진 단어. 예수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다. 종교를 넘어 모든 이들의 축제일이기도 하다. 성탄절 축제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캐럴의 기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춤곡 또는 야외에서 부르는 노래였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캐럴은 중세프랑스어인 ‘카럴(carole)'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는 ’둥글게 둘러서 춤을 추는 행위‘라는 뜻을 가진 용어다. 그래서 캐럴은 여러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추면서 함께 불렀던 곡이란 것이다. 원래는 ’춤곡‘이었다는 설이다.

다른 설은 야외에서 부르는 노래. ‘민중의 종교노래’였다는 의미다. 특정 장소가 아니라 일하다가, 길을 가다, 마음에 모여서 서민들이 불렀던 노래가 캐럴의 기원이라고.

여하튼 기원은 지금처럼 크리스마스 노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캐럴은 주로 영국과 폴란드에서 많이 만들어 졌다. 종교색이 짙은 ‘축제의 노래’로 변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대에 따라 여러 변천사를 거쳤다. 그리고 19세기 들어와 세속적이고 대중적인 노래들이 등장했다. ‘징글벨’, ‘루돌프 사슴 코’, ‘산타 할아버지 우리 마을 오시네.’ 등의 캐럴이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지금의 캐럴은 크리스마스시기에 부르는 노래다. 캐럴은 영어 호칭으로, 프랑스에서는 노엘(noel), 독일에서는 바이나흐츠리트(Weihnachtslied), 스페인에서는 빌란시코(villancico)라고 부른다. 곡들은 대체로 친숙해지기 쉬운 밝은 것들이다. 가사의 이미지는 일반적으로 소박하면서 신선하다. 크리스마스에 모이는 민중의 기쁨이 꾸밈없는 수사로 솔직하게 노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최고의 겨울 노래다. 연인들의 러브송이다. 어린이들을 기쁘게 한다. 흘러나오는 종소리와 음색은 익숙하고 친근하다. 어린 시절 추억이 담겨있다. 젊은 시절 사랑의 약속도 숨어 있다. 행복한 기억도 남아 있다. 화해와 용서의 기분에도 잠긴다. 캐럴은 형형색색으로 꽃단장한 성탄트리와 잘 어울린다.

눈썰매를 끄는 루돌프 사슴 코가 떠오르게 한다. 빨간 양말 속에 감춰진 선물의 궁금증이다. 눈 덮인 작은 예배당의 종소리를 연상시킨다. 그렇게 이유 없이 들뜨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캐럴이다.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스크루지 구두쇠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이 지난 172년 동안 ‘나눔과 베풂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크리스마스 정신을 일깨워 주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즘엔 예전과 달리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12월이면 언제 어디서나 캐럴을 들을 수 있던 그 때가 그립다. 그렇게 살고 있자니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이 남긴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란 메시지가 더욱 간절하게 와 닿는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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