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시아의 허브, 인천 국제공항

2015-12-12 (토) 전재구(예비역 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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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29일 인천 ‘영정도 국제공항’이 개항되었다. 이는 1992년 11월12일 기공식을 올린 후 9년여 만에 보는 민족적 대 역사의 하나이다. 현재의 인천국제공항은 수용능력으로 볼 때 연간 운항횟수 29만대, 이용객 수 4,551만명, 화물 255만톤, 환승여객 725만명을 처리하는 세계제8위의 대 공항으로 발전했다. 이 공항건설에 본인도 참여하였다는 점에서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 공항은 본인이 건의한 지 만13년 만에 성사 되었다는 점에서 만감이 교차 된다.

1987년 본인은 대한준설공사 상임고문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때 준설공사는 인천시 서구 해안 100만평과 영정도 해안 30만평을 매립하고 있었다. 이 방대한 사업은 한진그룹으로 민영화되기 전 국영기업으로 있을 때부터 간척사업허가를 받아 바다를 매립 육지를 조성하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인하여 인천시와는 많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 해 12월 중순경 나는 당시 인천직할시장 이재창씨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 시장에게 제안했다
“시장님, 이번 선거에서 노태우 차기 대통령이 서해안 시대를 개막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미국에서 개발 중에 있는 21세기형 초음속 로켓트 항공기는 완성되면 뉴욕에서 서울까지 4시간이면 도달 할 수 있다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 아시아지역에서는 이 거대한 초음속 항공기를 수용할만한 대규모공항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이런 날을 예상해서 아시아의 모항을 준비한다면 한국은 허브공항, 교통 및 관광중심지로 비약적 발전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이에 이 시장은 “전 고문님, 거기에 국제공항을 만들면 북한측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그들이 로겟트포라도 쏘는 날이면 불바다가 될 텐데요.” 하면서 반대했다. 나는 다음날 개인적 친분이 있는 이범준 교통부장관을 찾아갔다.

그 분을 면담하고 그분에게도 같은 뜻을 전하고 재원조달은 일본 간사이[關西]국제공항과 같이 반관 반민 합작형식으로 추진해 줄 것을 건의했다. 그분은 대 찬성을 해주어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1988년 2월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하고 3월 교통부 초도순시 때 건의되어 본격적으로 추진하라는 재가가 떨어졌다.

1988년 초 또다시 취임한 김창근 교통부장관을 방문, 영종도 공항건설 추진을 강력 요청했다. 그분도 이에 전력투구하겠다고 적극 찬동해주었다. 나는 그해 4월 일본이 대판 해상에 건설 중에 있는 간사이국제공항을 시찰하였다. 나는 이 공사를 전담하고 있는 간사이공항 주식회사측으로부터 각종 자료를 얻어 귀국즉시 상황을 보고하고 정부측에 신공항 건설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 했다.

1990년 3월, 나는 대한준설공사 사장에 임명된 후 즉각 매립선진국인 화란을 답사 했다. 그리고 공항 건설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싱가폴로 날아갔다. 그 결과 공사가 본격화되고 영정도에 새로운 역사의 장이 펼쳐지게 되었다.

이 거대한 공항이 탄생하는데 많은 노고와 역할을 해주신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 전 이범준, 김창근 교통부장관과 건설교통부 관계 여러분과 숨은 초석에 앞장 서주신 고 조중훈 대한항공회장과 유호문 사장, 해저탐사에 근 2년 심혈을 기울인 태창학 고문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전재구(예비역 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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