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낙엽을 보며, 밟으며...

2015-12-05 (토) 주진경(은목 회장/ 티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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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우리들의 붉은 심장을 헤치고 나오기라도 한 듯 붉고 붉다 못하여 검붉게까지 물들은 단풍잎과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맑게 노란 청황색(靑黃色)의 잎새들이 길 양옆에 빨갛고 노란 형광등을 켜놓은 듯 아침 햇살에 비춰 빛나고 있다. 또 어떤 잎새들은 된장색처럼 누르칙칙하고, 어떤 잎새들은 진흙처럼 거무틱틱하게 물들어 더러는 땅에 떨어져 뒹굴며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길에 밟히고 있다.

이 잎새들은 모두 여름인 실록의 계절에는 그 수종(樹種)이나 잎새 모양과는 구별 없이 푸르청청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하고 실록의 상쾌함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동면의 겨울을 앞두고 추수의 계절 가을을 지나면서 그 푸르청청하던 실록은 사라지고 제각기 형용색색의 자기 색깔로 물들어가며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가고 있다. 그 물들은 잎새들의 낙엽은 아직도 악착같이 나무에 더 붙어있으려는 것처럼 매달려 있으나 조만간 땅에 떨어지고 말 것이며 고엽(枯葉(덧말:고엽))의 마지막 길을 갈 것이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어 허리를 굽히고 손을 내밀어 빨갛고, 노랗고, 어떤 것은 절반은 빨갛고 절반은 노란 아름답고 고운 잎새들을 색깔대로 주어 집었다. 그 아름다움을 좀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였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은 계절에 견주어 생각할 수 있겠다. 인생의 봄, 여름은 누구나 다 저 푸른 수목의 신록의 계절처럼 차별 없이 자기 잘난 멋대로 마음껏 그 나름의 인생의 푸른 계절을 누리고 살 것이지만 인생의 휴면기를 앞두고 인생의 가을, 석양을 맞이하게 되면, 저 여러 가지 색으로 나타난 잎새들처럼 제각기 자기가 살아온 삶의 색깔들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나는 유독 깊은 사색과 상념에 젖게 한 이 이른 아침의 물들은 낙엽의 거리를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어둡고 험한 거친 세상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의와 진리와 거룩으로 살아간 사람들의 신앙과 삶으로 이렇게 밝아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 간직되고, 기려지고 흠모하는 고매한 인격으로 아름다운 이름이 남겨지고, 어떤 사람은 그렇게 잘난 모습으로 살고 떵떵거리고 한 인생의 계절을 누렸다 할지라도 가을이 되어서는 다른 사람들의 아낌을 받지 못하고 외로운 노후를 살다가 떠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전도서 7:1절에서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고 술회하였다. 그는 세상에서 최고의 영화와 보배로운 기름을 마음껏 누린 사람이었으나 그는 인생을 마감하는 말년에 그의 아름다운 이름을 갖지는 못하였다. 이 구절의 말씀은 정령 그가 마음껏 영화와 보배로운 기름을 누렸어도 인생의 아름다운 마지막 이름을 갖지 못한데 대한 탄식의 고백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이름은 어떠한 이름인가? 그것은 나를 비우고, 낮추고 이웃에 덕을 세우고 나라를 사랑한 사람들의 이름이다. 아름답게 단풍이드는 원리는 푸르기만 한 이파리가 자기가 갖고 있던 엽록소를, 차가운 동면의 계절을 맞으면서 최대한으로 내뱉고 배출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영육 간에 내속에 축적되어있는 것들을 자꾸 비워 낼 때, 저 투명하고 깨끗하게 물들은 단풍잎처럼 내 심령이 깨끗하고 맑으며 얼굴이 맑고 밝게 빛나며 내 이름이 내 인생의 아름다운 기념비로 세워지게 될 것이다.

<주진경(은목 회장/ 티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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