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 해의 끝자락’

2015-12-07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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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12월.
12월은 회한의 달이다. 마지막 달력 앞에 서면 누구나 숙연해지기 마련이다.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시간과의 이별이 새삼스럽기 때문이다. 새 달력 앞에서 한 해의 계획을 세우고 결심을 다짐 한 것이 불과 얼마 전. 그러나 삶을 추스릴 사이도 없이 아쉬움을 남기는 시기를 맞고 있는 것. 누군가 12월은 1년 중 달력을 가장 많이 보는 달이라 했다. 아마도 가는 날이 아쉬워 들여다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달력을 대하는 느낌도 다른 달과는 다르다고 한다. 그저 날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지난 흔적들이 대비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달력이 한 장 달랑 남았다. 한 해의 마지막 달력. 그곳엔 약속일자가 많이 있다. 할 일도 빼곡히 적혀 있다. 한 해가 바뀌면 할 수 없는 일들. 12월은 아직 못다 한 일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그래서 늘 끝맺음을 잘해야 하는 달이다.

한 해의 마지막 달. 각종 모임이 겹친다. 그래서 일 년 중 가장 바쁘다. ‘급하면 돌아가라’고 했다. 바쁠수록 속도를 줄여야 한다. 깊은 생각도 필요하다.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구분해야 한다.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도 분별해야 한다. 그래야 피곤하지 않게 한 해를 마무리 할 수 있다. 어떤 일이든 시작이 중요하지만 마무리를 잘 하는 것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12월은 사랑의 계절이다. 누구나 한번쯤 추위와 굶주림에 고생하는 이웃을 생각한다. 일 년 내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열한 달을 잊어버리고 12월 고작 한번뿐이면 어떠리. 무심하게 살면서 12분의 1만큼의 세월에.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것. 나눌 것이 없는지 되돌아보는 것. 그 것만으로도 가슴은 뿌듯해질게다. 어느 시인은 말한다. 어렵다고 생각할 때 나 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라고. 불행하다고 여길 때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떠올리라고. 그리고 괴롭다고 느껴질 때 나보다 더 괴로운 사람이 있음을 잊지 말라고. 내가 낮아질 때 더 낮은 사람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행복지수가 높아질 수 있다. 동시에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생겨나는 법이다. 인디언은 말을 몰 때 빠르게 달리다가 자기 영혼이 따라오도록 잠깐 쉬어가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우리도 한 해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온 생활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이웃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좋겠다.

한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간다. 올 한해를 잘 보낸 사람들. 그들은 다음해에도 좋은 일들이 많기를 바라며 기다린다. 한 해가 힘들었던 사람들. 그들 역시 새해에는 좋은 일들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2월을 보낸다. 그렇게 한 장 남은 달력을 채워가고 있는 것이다. 매듭이 없는 게 시간이다. 가는 세월은 잡을 수 없다. 하지만 12월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한 해를 정리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있다. 그래서 희망이 남아있는 달이다.
한해의 끝자락이다.

경제 한파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지속되는 불황에 기대와 희망은 바닥이다. 한인들의 편싸움은 그치지 않고 있다. 한인사회의 분열 양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위기와 시련 그 자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희망은 남아 있다. 위기는 위험하지만 동시에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기를 ‘위대한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지금 한인사회는 바닥에 놓여 있지만 ‘바닥은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일 뿐이다. 바닥의 위기를 위대한 기회로 삼을 때 ‘걸림돌이 디딤돌’로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문병란 시인의 ‘희망가’에서 따온 구절이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답답한 한 해를 보내고 있지만, 12월이 ‘위대한 기회’의 달이자 ‘희망’의 달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는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발휘할 때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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