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의 친일을 용서?
2015-12-05 (토) 10:53:33
정영근 / 매릴랜드
“그들은 천황폐하의 크신 뜻을 아직 헤아리지 못하였다. 천황폐하께서는 조선 백성을 본래 일본민족과 꼭 같으신 인자하심으로 대하시는 줄을 깨닫지 못하였었고, 또 일본 민족이 조선 사람에 대하여서 동포의 정과 의를 가지려는 것을 느끼지 못하였다.... (중략) 만일 그때부터 그 청년들이 우리는 천황의 적자요 일본의 신민이라는 자각과 감격을 가졌던들, 조선 사람은 더 많은 진보와 행복을 얻었을 것이다” 1941년 월간 신시대에 실린 가야마(이광수)의 ‘그들의 사랑’이란 글 중 일부다.
다음해 국민문학지에 발표한 소설 ‘가가와[加川] 교장’에서 가야마는 노골적으로 조선 민족을 멸시하고 일본 민족을 떠받든다. “가가와의 지론으로서는 이 세상을 더럽히는 것은 약아빠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조선 사람이 그러해서 조선 사람의 아이들 중에는 지나치게 약아빠진 사람이 많다. 가가와에게는 바보스런 얼굴이 좋았던 것이다. 도고나 야마모토나 영리한 인간은 아니다…우직했기 때문에 집도 가정도 잊고 바다를 지키고 일만 했던 것이다”도고는 2차 대전 때의 일본수상 도고 시게노리, 야마모토는 태평양 전쟁당시의 연합함대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를 가리킨다.
최근 이 지역 일부 문인들이 이광수의 친일 행위를 용서한다고 했다. 민족을 배신한 행위를 개인이 용서하고 말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일합병 이후 이광수는 도쿄에서 학생독립선언을 주도하기도 하고 비분강개 했으나 훗날 변절했다. 친일파와 그 주위의 기회주의자들의 변명은 다양하다. 암울했던 일제시대 친일 안한 사람 어디 있냐는 전 민족 공범론, 친일도 했지만 애국도 했다는 양비론, 친일 청산을 말하는 자는 빨갱이라는 색칠하기, 이광수처럼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것이었다는 친일 민족주의론 등 수 많은 궤변이 동원된다.
일제 36년 동안 조선국민과 애국자들은 친일 분자에 의해 숱한 곤욕과 낭패를 당한 것은 물론, 잔혹한 고문 감시 미행 체포 수탈의 위험에 시달려야 했다. 오죽하면 석오 이동영, 백범 김구 같은 분들이 일본인 순사 보다, 일본인 행세하는 동족 매국 친일, 부일배가 더 증오스럽다고 토로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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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근 / 매릴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