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브루클린 플리머스 교회

2015-11-30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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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월요일 루이 로즈불륵스 여사(81세)가 뉴욕 브루클린의 플리머스 교회, 역사위원장직을 사임하였다. 그녀는 이 교회 168년의 역사를 정리 관리하였다. 플리머스 교회는 뉴욕 최초의 교회로서 노예 해방운동의 선두에 섰던 역사적인 교회이다. 특히 이 교회는 저명한 헨리 비처 목사가 시무한 곳으로 더욱 이름이 높다.

미국에 노예제도가 있던 시대, 노예를 무단히 석방하는 것은 중형에 처해졌다. 그런 시대에 비처 목사는 자기 교회에 피신해오는 노예들을 지하실에 숨겨 주었다가 캐나다로 도망하도록 도왔던 것이다. 이렇게 비처 목사가 해방시킨 노예는 수백 명에 이른다. 국법을 어기는 결사적인 작전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비처 목사는 자기가 믿는 예수를 ‘인간 해방자’로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는 자기의 사명이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것이며, 자기가 전하는 복음이란 포로된 자를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누가복음 4:18) 성경은 실로 인간해방의 선언이다. 바울은 구원을 죄로부터의 해방이라고 가르쳤고(로마서 3:23), 다윗은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으로(시편46:1), 모세는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으로(히브리서 11:24), 베드로는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으로(베드로전서 4:12), 요한은 미움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하였다.(요한 일서 4:20)


자유라는 말은 미국 자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립도 자유를 위한 것이었고, 헌법도 자유의 외침이며, 국가도 자유의 노래이다. 미국인의 자랑이 자유이고 그들의 긍지와 삶의 의미도 자유를 지키는 것이며, 2백년의 역사도 자유의 투쟁사였다.

패트릭 헨리가 버지니아 의회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선언한 외침(1775)이 독립전쟁의 씨앗이 되었고 오늘날까지 미국의 정신으로 남아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자유의 선언을 빼놓지 않고 언급한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은 동시에 자유를 주셨다”는 제퍼슨 대통령(제3대)의 선언이 미국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이 되었다.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서가 서명되었다. 56명의 지도자들이 영국의 압제에 대항하여 해방 성명을 한 것이다. 이 서명은 목숨을 건 행위였다. 그들 중 제 명을 다한 사람은 몇이 안 된다. 다섯 명은 영국군에 체포되어 고문 끝에 죽었고, 아홉은 싸우다가 죽었으며, 열두 명은 재산이 방화되고 그들의 자녀는 전화 속에 사라졌다.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피 흘린 사람들의 덕분에 오늘의 미국이 건설될 수 있었다.

버지니아의 부호 토마스 넬슨은 전재산 200만 달러를 던져 프랑스 함대를 유치하여 영국과 싸웠다. 결국 사재를 국방비로 쓴 것이지만 미국 독립 후에도 반환 받지 않고 그는 파산 상태로 세상을 떠났다. 델라웨어의 지도자 토마스 매킨은 영국군의 수색에 쫓겨 다섯 달 동안에 다섯 번 이사를 하며 도망 다녔다고 한다.

넬슨 만델라는 27년의 옥살이를 끝내고 감옥에서 나오는 날 “내가 사는 목적은 인간의 존엄성과 해방을 위해서이다.”고 선언하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신앙과 자유가 미국 안에 보장되고 있는 한 미국은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선언하였다.

좋은 나라란 백성이 자유의 깃발 아래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나라이다. 자기의 생각을 말과 글로 자유롭게 표현하며 살 수 있는 것이 인간의 기본권을 만끽하는 삶이다. 그러나 자유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억악받는 사람들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자유는 자연히 정의의 문제가 된다. 흑인의 문제는 흑인만의 문제가 아니고 북한의 인권문제는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가 지난 백년의 투쟁을 통하여 배운 것은 이데올로기(주의와 사상)보다 자유가 낫고 대립보다 협력이 낫다는 것이었다.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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