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도무문(大道無門)’

2015-11-30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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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어록 중 백미는 단연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 YS는 1979년 신민당 총재에 재선된 후 “대도무문, 정직하게 나가면 문은 열립니다. 권모술수나 속임수가 잠시는 통할지는 몰라도 결국은 정직이 이깁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대도무문은 직역하면 ‘큰길에는 문이 없다’는 뜻이다. 의역하면 ‘올바른 길을 가노라면 거칠게 없다’는 의미다. YS의 좌우명이자 정치철학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정치인생 흔적이 배어있는 곳곳에는 ‘대도무문’과 얽힌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1990년 YS는 ‘3당 합당’을 야합으로 규정한 야권으로부터 ‘대권에는 문이 없다(大權無門)’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1992년 대권을 앞두고 대도무문을 새긴 시계를 대량으로 제작했을 때는 “대도무문(大盜無門)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하기도 했다고. 아마도 그 당시 정적들이 YS 험담용으로 만들어 낸 말들일 게다.


대도무문은 통역과정에서도 이야기 거리를 남겼다.
1989년 YS로부터 대도무문 휘호를 선물 받은 소련대표단들이 그 뜻을 묻자, 통역관이 ‘페레스트로이카(개혁개방)’라고 했다는 촌극이 벌어졌다고 한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도 웃지 못 할 이야기가 등장했다.

YS가 새벽 조깅을 마친 후 ‘대도무문’을 일필휘지해 선물하자 그는 당시 박진 공보비서관에게 그 내용을 물었다. 비서관은 직역해서 “큰길에는 문이 없다(A high street has no main gate.)”라고 답했다. 그가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짓자 이번엔 조금 멋을 부려 “정의로움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Righteousness overcomes all obstacles.)”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반응이 신통치 않자 아예 미국 스타일로 “고속도로에는 요금정산소가 없다(A freeway has no tollgate.)는 의미다”라고 설명하니 그때서야 클린턴 대통령은 박장대소했다고 한다.

대도무문을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짓궂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대도무문'의 '길 도'(道)를 '도둑 도'(盜)로 바꾸어 사용하는 경우다. "큰 도둑에게는 문도 필요 없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다. 술꾼들 중에는 ‘대도무문’을 완전히 뜻이 다른 건배사로 애용할 때도 있다. “대리운전 도착한다, 무슨 술이든 문제없다”, 이렇게 외치며 서로 술을 권한다니 참으로 대단한 노릇이다.

“큰 길에 들어가는 문은 없으나(大道無門) 그 문은 어떤 길로도 통한다(千差有路). 이 길을 잘 지나면(透得此關) 홀로 천하를 걸으리라(乾坤獨步).”
송나라 선승 혜개(1183-1260) 스님의 수행이치를 담은 화두를 모은 책 ‘무문관’에서 비롯된 말이다. 큰 길, 즉 큰 도에 들어가는 문이란 원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은 허공에 만들어 놓은 개념의 틀일뿐이다. 하나의 고정된 문이나 길이 없이 삼라만상 일체가 모두 문이어서 ‘대도’라 일컫는 것이다. 본래 대도무문은 불교에서 나온 말로서 심오한 뜻을 갖고 있는 것이다.

2015년 한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이제 꼭 한 달 남았다. 올 한인사회에서는 참담한 일이 생겼다. 수개월 째 ‘한 지붕 두 회장’ 사태를 겪고 있는 뉴욕한인회를 말함이다. 오죽했으면 한국정부가 분규단체로 지정했을까. 한인사회의 위상을 추락시켰다는 비난을 피해갈 수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 한인회장은 불통이다. 이미 서로간의 협상과 대화는 물 건너간 듯하다. 변함없이 편싸움만 일삼고 있는 셈이다. 그런 현실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 암담할 뿐이다.

선불교 전문가인 미산 스님은 불교의 대도무문은 ‘중도’의 실천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진리의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은 내 것이 옳다는 자기만의 주의나 주장을 깨뜨리고 중도의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나만이 옳다는 이분법으로 파벌과 갈등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어쩌면 현재까지도 불통인 ‘2명의 뉴욕한인회장’에게 꼭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싶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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