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벽화마을에 벽화가 없다

2015-11-24 (화) 김재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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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빵에 국화 있는 것 봤는가? 붕어빵에 붕어 없다는 얘기는 어린 시절에도 많이 듣고 자랐다. 그런데 몇 주 전 서울 방문길에 이런 유의 말들을 실제로 현장에서 경험해 보았다. 아들부부가 월차를 내어 효도관광으로 잡은 목적지는 서울 삼청동 북촌 마을과 이화동 뒷쪽에 자리 잡은 낙산의 벽화마을이었다. 벽화마을…. 며칠 전 예쁘게 변신한 인천 송월동의 동화마을을 지난 적이 있어서 약간은 들뜬 마음으로 따라 나섰다.

낙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벽화를 찾았으나 벽화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동네 주민에게 물었는데 대답이 시원치 않았다. ‘더 올라가세요. 가도 별로 볼 것이 없을 턴데요...’ 말꼬리가 흐려지는 예감이 웬지 부담이 되었다. 헉헉거리며 가파른 낙산의 언덕길 너머 찾아간 벽화 마을에는 과연 벽화가 없었다. 고작해야 빛바랜 페인트 그림 열 서너 점이 낙후되고 어지러운 골목에 숨어있었을 뿐이다.

벽화 없는 벽화마을에 벽화를 찾아다니는 중국인들을 보니 안쓰러워 보였다. 제대로 볼거리라도 장만해 놓고 손님을 청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던가? 아무리 국화빵에 국화가 없다 치더라도 한 입 먹거리 빵은 있지 않는가! 괜스레 저 외국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니 난 확실히 한국인이었다.


영상으로 보았던 그리스 산토리니 마을이 생각났다. 온통 하얀색의 작은 섬 마을... 군데군데 파~아란 하늘색의 돔들을 배경으로 펼쳐진 평화롭고 드넓은 바다색의 조화가 세계인들을 자석처럼 끌어 모은다. 약간의 흉내를 낸 곳이 부산의 감천 마을이라고 한다. 낙산공원도 벽화만 제대로 갖추면 조금도 모자라지 않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자부한다.

낙산에서 내려다보는 강북 서울은 파노라마의 현장 그대로였다. 공원 건너편 멀리 남산타워와 오른쪽으로는 북한산과 백운대 인수봉이 병풍처럼 둘러있다. 서울 강북을 보려면 남산이 아니라 낙산이 제자리였다. 서울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이제 벽화 마을에 벽화만 그려놓으면 유서 깊은 옛 조선과 현대화를 박차고 세계위에 우뚝 선 옛것과 새것이 대비된 코리아 서울의 진면목을 더 많은 이들에게도 권할 수 있을 것 같다. 벽화 마을에 벽화만 갖추면 불경기가 호황으로 바뀔 것이다.

문득 벽화 없는 벽화마을을 떠올리면서 감사가 없는 감사절이, 아기 예수가 없는 크리스마스가 서서히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마치 앙꼬 없는 찐빵같이 맛없는 인생살이 속에서 마지못해 살아갈 세인들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벽화마을에 벽화를... 추수감사절에는 풍성한 감사를... 성탄절에는 주인공 아기 예수가 가득한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김재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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