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관포지교 (管鮑之交)

2015-11-21 (토) 전태원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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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평생 살면서 한 두 명의 막역지우는 있기 마련이다. 그 우정의 척도가 얼마나 진솔하고 상호 인생을 통해 보람 있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인연으로 이어지는 가는 전적으로 본인들에게 달려있다고 본다. ‘재향군인의 날’을 지내면서 친구를 떠올리며 옛날을 회상해 보았다.

내가 잭을 처음 만난 건 1968년 월남 나트랑 시에 소재한 미 야전병원이었다. 당시 나는 주월 한국군 모 기관 소속으로 사복 근무를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한 대원이 위에 심한 통증을 느낀다고 해서 급히 환자를 데리고 가까운 병원을 찾았던 곳에 잭은 군의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잭은 사전예약도 없이 들이닥쳤는데 친절하게 꼼꼼히 진료를 하고 약 처방까지 챙겨주었다. 그리고 그 해 추수감사절 위문공연 장소에서 또 조우하는 인연으로 이어지면서 국적과 소속은 달랐지만 지금까지 계속 만나고 있는 전쟁터에서 맺어진 전우가 된 사이였다.

그러니까 72년 도미, 지난 43년간을 어릴 적 동무였던 친구인 양 양가를 오고가며 가슴 벅차는 만남을 계속하고 있다. 더군다나 미국 유학을 꿈꾸고 있던 나에게 학업을 마칠 때까지 무상으로 숙식 제공에다 용돈까지 부담하겠다는 깜짝 놀랄 초청장을 공증까지 받아 보내온 눈물겨운 친구였으니…


우리 결혼식에도 모든 스케줄을 미루고 1박2일간 시간을 내서 참석 했고 신혼 부부였던 우리와 한 아파트에서 하루 밤을 함께 했던 친구…

부부가 다 아일랜드계 이민 3세였는데 두 사람이 양가 부모에게 공히 효도하고 공경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정말 우리 옛 어르신네들의 조상과 부모를 섬기는 정신과 미덕을 보여주는 것 같아 이런 친구들과의 인연에 늘 감사하고 살았다. 우리는 매년 적어도 한 번씩 부부 동반으로 1,2박씩 회동을 했었는데 지난 주말에도 재작년 방문에 이어 1박2일 일정으로 올라가겠다고 거의 일방적으로 통보를 했다. 지난번에도 한국인 지인 셋을 대동하고 쳐들어갔는데 아침 식사만 ‘잭’과 ‘매리 루’가 조식을 준비했고 점심과 저녁은 2박3일 동안 우리가 준비해 간 음식 재료로 한식을 만들어 맛있게 함께 즐겼다.

(이곳 미국에도 죽마고우가 생존해 있긴 하지만 고령이다 보니 운신하기에도 자유롭지 못할 뿐 아니라 지병에 시달리는 상황이니 왕래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게다가 지난달에도 또 한 명의 친구가 황망히 우리 곁을 떠나갔는데 자신이 의사이면서도 본인의 건강을 챙기지 못한 케이스로 안타까운 마음 달랠 길이 없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의 끝자락까지 와 있는 기분이 드는 건 나뿐 만은 아닐 것 같다. 고국에는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이 설레는 절친 H가 건재해 있고 언제나 변함없는 사랑을 베푸는 친형 같은 D선배도 그립다. 그러고 보니 빙햄튼까지의 운전 거리 세 시간은 짧은 가, 긴 가를 가늠해 보는 고민도 즐거운 고민이 아닐까? 한국은 비행시간만 13시간이 넘으니까. 불현듯 어디서 본 이런 문구가 생각난다. ‘The road to a Friend’s house is never long.’ 관포지교의 정을 나누는 친구의 집으로 가는 길이 과연 멀게 느껴 질 수가 있으랴!

(이번 방문에도 지인 부부 한 쌍과 40대 한인 여성을 대동하고 올라간다고 통보를 했는데 전화를 받는 순간 첫 일성이, “마이 갓, 태원! 정말 올라오는 거냐? 알지만 우리 집 방은 본채에만 4개, 150 에이커에 있는 저수지 옆 ‘커티지’에도 침실 두 개… 언제나처럼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아무 걱정 말고 올라오라고 한다,

대개 누구나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서 가까이 지내며 자란 동무들이 있는 게 상례이지만 사람이 한 생을 살면서 관포지교의 벗을 둔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는 설명이 필요 없다고 본다. 하물며 타국인 미국에서 43년의 세월을 두고 변함없는 우정을 나누는 복을 누림에 있어서랴!)

<전태원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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