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리는 건재하다

2015-11-20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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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집단 IS가 파리에서 사상 최악의 연쇄 테러를 일으키자 프랑스는 즉각 응징에 나섰다. 지난달 31일 여객기 테러를 당한 러시아의 가세, 항공모함을 동원한 미국 등 IS 봉쇄작전 주체가 국제적인 연합군 형태로 확대되고 있다.

이날 축구경기장으로 진입하려다 실패한 테러리스트들은 자폭 했고 연쇄 테러소식을 뒤늦게 접한 축구장 관중들은 그라운드에 모여 퇴장을 기다리면서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합창했다. 부드러운 듯 강한, 잔잔한 노래의 파문이 지구촌 세계 각국의 안방으로 전달되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야만과 폭력, 잔인한 살상으로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IS의 파리 테러에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탈리아주교회의 공식 TV네트워크를 통해 ‘정당화될 수 없는 비인간적 행위’ 라며 ’파리 테러 공격은 단편적인 제3차 세계대전의 한부분’ 이라 지칭했다.


다들 알고 있다. 만일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 핵보유국들이 총동원 되는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 인류는 멸망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숱한 사람들이 죽었고 수많은 가정이 붕괴되었으며 살아남은 자들은 극한적 고통을 당했다.

1914년 7월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의 전쟁으로 촉발된 제1차 세계대전은 1918년 11월11일까지 독일, 이탈리아, 터키, 러시아, 루마니아, 일본 등의 35개국이 전화에 휩싸였다.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식민지가 필요했던 유럽의 영토전쟁이었다.

18~40세의 남자들은 모두 동원되었고 여자들은 출정하는 남편, 삼촌, 오빠, 아들을 환송한 뒤 탄약공장에서 고성능 폭탄을 조립했으며 트럭이나 버스 운전, 농사에 종사했다. 경제가 통제되며 식품과 의류는 배급되었고 여자들은 전선의 장병들을 위해 양말을, 아이들은 방독면에 쓸 복숭아씨를 모았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군이 폴란드 국경을 넘어 진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폭격으로 공장과 가옥이 폐허화되고 가족들은 이산의 쓰라림에, 또 인종과 종교가 다르다고 죽임을 당했다. 독일, 이태리, 일본의 3국 동맹이 세계 제패를 위해 일으킨 이 전쟁에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47개국의 연합국이 대항해 싸웠고 1945년 전쟁이 끝냈다.

전쟁기간동안 유대인들은 수용소에서 애꿎은 목숨을 잃었고 자동차제조 및 부품업체들은 비행기와 탱크를, 전자가전제품업체는 레이더 장치와 폭탄을 만들어야 했다, 어머니들이 남자 대신 직장에 나가면서 10대들은 거리를 헤매 ‘청소년 범죄’라는 용어가 생기기도 했다. 일제식민지하의 조선도 인력과 물자를 수탈당했다.

지난 17일, 20대 청년 무슬림이 파리 레뷔블리크 광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쓴 종이를 바닥에 놓고 눈을 가린 채 섰다. “나는 무슬림이다, 나는 당신을 믿는다, 당신도 나를 믿느냐? 그러면 나를 안아달라.” 길 가던 파리 시민들은 스스럼없이 다가와 그를 안아주었다. 전세계적으로 선량한 무슬림들이 의심을 사고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테러리스트는 그냥 테러리스트일뿐인데...

파리 시민들은 부상자를 위한 헌혈을 하려고 응급실로 달려와 몇시간을 기다리고 사랑의 도시 파리는 절대 굴복 않는다며 테라스에서 와인을 마시고 거리를 활보하고$ 파리는 건재하다.

다음 표적은 워싱턴 DC, 뉴욕 맨하탄이라는 IS의 공갈협박에 우리는 추수감사절 퍼레이드, 맨하탄 식당에서의 생일파티,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 공연 구경을 포기해야 할까. 테러에 대한 공포와 불안대신 용서와 평화, 삶의 소중함, 생명의 고마움에 대한 감사와 그 어느 때보다 성숙한 시민정신이 필요할 때다. 사람이 사람을 믿어야 한다. 결국엔 이 무한한 신뢰가 불신에 가득 찬 인간 세상을 정화시킨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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