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중하차 역!’

2015-11-16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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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병원에 5명의 남자가 한 병실에 입원했다. 모두 아내한테 맞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맞은 이유는 제 각각이었다. 40대 남편은 전날 밤 술 마시고 들어와서 해장국 끓여 달라고 해서 맞았다.

50대 남편은 아내가 TV보고 있는데 함부로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렸기 때문이다. 60대 남편은 외출 중인 아내에게 어디 가냐고 물어봤더니 때리더란다. 70대 남편은 배고파서 밥 달라고 했다가 맞았다고. 80대 남편은 ’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침에 눈 떴다고 맞았다‘고 하소연 했다고 한다.’ 이는 비록 우스갯소리지만 오늘날 남편들의 실상이 어느 정돈지를 가늠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가정폭력하면 흔히 매 맞는 아내를 떠올리곤 했다. 시대가 변하다보니 요즘은 맞고 사는 남편들도 수두룩하다. 수치도 별반 차이가 없다.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의 통계를 보면 아내 3명중 1명, 남편은 4명중 1명꼴이다. 더 이상 아내들만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그러다보니 남편들의 속앓이가 더 심하다.


신체적 폭력을 당해도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육두문자의 언어적 학대에도 ‘못난 놈’이라는 사회적 편견으로 웃음거리가 되기 쉽기에 남에게 말도 못하고 끙끙 앓고 있는 것이다.

남편을 때리는 아내의 성품은 어느 정도 타고 난다고 한다.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때리려면 동정심이나 겁이 없고 충동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사람은 상대방이 아프다는 생각에 때리지 못한다. 다른 이의 고통에 공감하고, 사려 깊은 마음이 있는 사람은 매를 들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부분 남편을 때리는 아내들은 동정심이 없고, 충동적이고, 겁이 없는 성품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인 게다.

아내가 때린다고 대응차원에서 아내에게 폭행을 가하는 남편은 드물다고 한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아내를 말린다. 손을 붙들어서 더는 못 때리게 한다. 뒤에서 안아 꼼짝 못하게 하는 정도다. 물론,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결국 아내가 때리면 엉겁결에 당하는 게 대부분인 셈이다.

그렇다면 허구한 날 맞는 남편들은 왜 참고 사는 것일까? 전문 가정상담원은 이렇게 입을 모은다. 우선 자녀에게 이혼의 상처를 안 주기 위해 참고 사는 남편들이 대부분이다. 마음이 심악해 평생을 살면서 일종의 세뇌가 되는 경우도 있다. 마음이 나약한 남편일수록 체면을 중시한다. 그러다보니 사회적 편견 때문에 매 맞는 사실을 알리지 못한다. 따라서 신고, 치료, 이혼이 쉽지 않다. 스스로도 못났다 여기기 십상이다.

맞고 사는 사실이 알려지면 무시할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냥 맞으면서도 산다는 것이다. 내가 조그만 잘하면, 아내가 조금만 바뀌면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환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남편들도 있다. 처가 때문에 참고 사는 사례도 있다.

사업가의 딸과 결혼한 직원은 아내에게 매를 맞고 살아도 이혼하지 못한다. 아내와 헤어지는 순간 자신의 장래 역시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아내가 자신을 때리는 것은 아내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상황 때문이라고 합리화하는 동정심 많은 남편들도 있다고 한다.

이유야 어떻든 매 맞는 남편들은 더 늦기 전에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 망설이지 말고 전문가 상담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적절한 대처법을 찾아야 한다. 부부간의 언어폭력, 신체폭력 등 가정폭력은 방치하면 점점 심해지기 때문이다.

스위스 취리히 호수 근처에 수년 전 매 맞는 남편들을 위한 쉼터가 생겼다. 아내 폭력으로 이혼한 남성들을 위한 보호시설이다. 쉼터이름은 ‘도중하차 역’이다.
날이 갈수록 매 맞는 한인 남편들이 증가 추세다. 이젠 아내 뿐 아니라 남편들도 가정폭력 피해자로서 보호와 치료를 받아야 할 지경이다. 언젠가는 한인사회에도 ‘도중하차 역’같은 쉼터가 필요할까? 그런 의문의 꼬리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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