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주영과 오늘의 북한

2015-11-11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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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초석이 된 현대기업의 창업주이자 전 명예회장인 아산 정주영회장이 태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이다. 그를 지금 다시 생각하는 것은 그가 대한민국 경제의 거목으로 한반도에 남긴 족적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남에게서 물려받은 쌀가게로 출발, 그는 온갖 시련과 도전을 이겨내고 피폐하던 대한민국 경제를 선박과 자동차, 가발, 건설업 등으로 일약 세계 경제의 반열로 올려놓는데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더욱 주목할 것은 그가 북한에 보인 뜨거운 관심과 열정, 그리고 어느 기업인에게서 볼 수 없던 남다른 동족애였다.

그는 1998년 두 차례 소 500마리씩을 이끌고 판문점을 통해 북에 간 것을 시작으로 금강산 관광 등 북한 경제발전과 남북한 인도적 교류에 적극 앞장섰다. 이를 계기로 남북간 인적, 물적 교류가 꾸준히 증가해 오면서 남북한 통일로 향하는 물꼬도 자연스럽게 터졌다.


그는 낡은 구두를 신고 부인이 짜준 털 조끼를 십년씩이나 입을 정도로 검소한 인물이다. 그가 이처럼 대망의 한민족 숙원사업에 심혈을 기울인 것은 개인의 안위와 욕심을 떠나 그만큼 북한경제에 대한 관심, 남북한 교류, 나아가서는 통일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그의 노력과 바람, 의지와 상관없이 여전히 지독한 가난과 지도자 김정은의 억압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를 견디다 못한 주민들이 죽음의 사선을 넘어 중국과 한국, 미국 등지에 산재해 새 삶을 살고 있다. 그간 발표된 바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서 살고 있는 탈북자수는 10만 명 정도, 한국에도 3만 여명, 미국에는 약 400명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대부분은 지옥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와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북한은 지금 주민들이 한 끼도 못 먹는 굶주림으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고, 말과 행동도 자유롭게 못하는 인권사각지대에서 신음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북한의 김정은은 피도 눈물도 없는 공포정치로 고모부 장성택이 자신을 향해 박수를 건성 쳤다고 기관포 수십 발로 사살한 것도 모자라 화염방사기를 쏘아 시신을 불태웠으며, 자신의 연설시 졸았다는 이유로 인민무력부장 현영철을 기관포로 무참하게 살해했다는 설까지 있다. 오죽해 지난해 미국무부가 발표한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북한 인권실태가 ‘세계 최악’이라고 명시했을 정도이다.

북한은 남한과 지난 8월25일 모처럼 남한의 크나큰 기대와 환호 속에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 3회에 걸쳐 남북한 8,000만의 염원인 이산가족 상봉을 전격적으로 이뤄냈다. 이제 이를 정례화시키고 서로 왕래하고 서신교환하고 하면서 일단은 서로의 관계를 좁혀나가는 것으로 관계개선을 얼마든지 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분단 70년만에 우리의 여망이 풀리나 했더니 또 다시 굳어지기 시작했다. 합의 3개월이 다돼가는데도 북한은 남한에서 세 번이나 보낸 남북접촉 제안에 대한 답변이 없다고 한다.

이번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지켜보면서 북한의 지도자들은 헤어진 핏줄을 70년 만에 만나 통곡하는 민족의 비극이 얼마나 처참한지 느껴지지도 않았는가. 김정은은 남측제안에 속히 답변을 해야 옳다.

가난은 나랏님도 못 막는다고 했던가. 북한의 실정은 아무리 퍼부어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남북간 교류에 오작교 역할을 한 정 회장의 노력이 언제나 결실을 맺을까. 조만간 이루어질 것으로 고대한다면 정말 기대 난망일까.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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