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Veterans Day!’

2015-11-09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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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veteran)은 불어로 퇴역군인, 노병, 고참병을 뜻한다. 이는 16세기에 라틴어 베테라누스(veteranus)에서 나온 말이다.

베테라누스는 베투스(vetus)와 베테리스(veteris)에서 파생한 형용사다. 그 의미는 ‘나이가 든’이다. 그러니까 베테랑은 원래 나이와 관계있는 말이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삶의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또 삶의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은 그만큼 ‘노련하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베테랑은 고대 로마시대에서는 ‘다년간 복무한 직업군인’을 지칭한 말이었다. 고대 로마제국 시대의 군사체제를 보면, 17-25세까지의 유니오레스, 25-35세까지의 시니오레스, 35-45세까지의 병사를 베테라누스로 편성했다. 여기에 ‘베테라누스’가 바로 ‘베테랑’의 어원인 셈이다.


베테랑은 ‘전직군인’을 가리키다 1740년부터는 ‘어느 한 분야에서 경험이 많은 사람’의 뜻으로 사용됐다. 그리고 1985년부터는 체육계에서 나이가 좀 들었다고 보는 연령인 35 이후에도 운동을 하는 사람을 칭하기도 했다.

불어인 베테랑의 반의어는 ‘블르(bleu)’라고 한다. 이 단어는 대개 ‘파란색의’ 라는 형용사로 쓰인다. 명사로 쓰일 때는 ‘신병’이라는 뜻도 된다. 신병의 뜻을 갖게 된 것은 옛날 신병들은 파란색 제복을 입고 부대에 배치되었기 때문이란다.

영어로도 똑같이 쓰이게 된 베테랑은 세월이 흐르면서 능숙한 사람, 전문가, 원로라는 뜻도 겸하게 됐다. 미국인들이 통상적으로 말하는 베테런스(veterans)는 국가를 위해 군복무를 마친 모든 연령층의 제대 장병을 지칭한다.

오는 11일은 ‘베테런스 데이(Veterans Day)’다. 이날은 제1차 세계대전의 휴전 협정에서 유래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1919년 6월28일 11시11분에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베르사이유 조약이 서명됨으로써 종료됐다.

그러나 사실 전쟁 그 자체는 연합군과 독일군 사이에 이미 7개월 전인 1918년 11월11일 11시를 기해 임시휴전에 들어감으로써 끝난 상태였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1918년 11월11일을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날로 보고 있다. 다음 해인 1919년 11월 11일 미국의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은 이날을 ‘휴전 협정의 날’로 포고했다. 이후 연방의회는 1938년 들어서 이날을 연방공휴일로 제정했다.

이 휴전협정 기념일은 세계평화와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을 기념하는데 주목적을 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1954년 연방의회에서 퇴역군인들의 건의에 따라 ‘휴전’이라는 단어 대신 ‘베테런스’라는 용어로 대치했다. 그리고 11월11일을 모든 전쟁에 참여한 미국 군인들을 기념하는 날로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오늘날 ‘베테런스 데이’의 유래다.

매년 뉴욕일원에서는 베테런스 데이(veterans Day)를 맞아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된다. 올해도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기념식과 퍼레이드가 한인 타운 곳곳에서 펼쳐지게 된다. 이날은 예년처럼 한인 참전용사들은 물론 한인들이 퍼레이드와 각종 행사에 참여해 재향군인들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념식에 참여하는 베테런스들이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단지 사라질 뿐이다’라고 다짐하는 자부심도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지금 미국에서 누리는 모든 자유와 부와 행복은 목숨까지 희생해 가면서 미국을 지킨 참전 용사들의 덕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04년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장에서 산화한 한인들의 수가 무려 24명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제2의 조국인 미국을 위해 전장에 나가 귀중한 생명을 바친 한인 젊은이들의 숭고한 정신도 널리 기려야겠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큰 희생은 없지 않은가. 오늘의 미국은 수많은 참전용사들이 뿌린 피 위에 세워져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하는 이유다.

11일 베테런스 데이를 앞두고, 다시금 나라사랑의 베테랑인 재향군인들의 애국심과 숭고함에 감사한다. 군대서 온몸과 마음을 바치고 있는 병사들에게는 다시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지 않기를 마음 속 깊이 기원한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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