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게 삶이야!

2015-11-07 (토) 이태상(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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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인근에 있는 과수원에 사과 따러 갔다 와서 집 주위에 잔디밭에 떨어져 있는 낙엽들을 긁어모아 수북히 쌓아 놓고 그 위로 일곱 살짜리 나의 외손자 일라이자(Elijah)가 벌렁 나자빠지더니 청명한 가을 하늘을 쳐다보다 지그시 눈을 감으면서 탄성을 지른다.

“이게 삶이야!(This is Life!)”
내 귀를 의심하면서 “너 금방 뭐라고 말했니?(What did you say just now)” 묻자, 제 엄마는 한미(韓美) 혼혈아이고 아빠는 유대인인 이 아이가 “이게 삶이야!”를 반복하고 나서 느긋이 웃으며 “농담이야(It’s a joke)”이라고 한다.

최근 친구가 이메일로 전달해준 글이 떠오른다. 촛불 하나의 교훈이다. 미국의 존 머레이는 한푼의 돈도 헛되게 쓰지 않는 검소한 생활로 부자가 된 사람이다. 어느 날 머레이가 밤늦도록 독서를 하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찾아왔다. 그러자 그는 켜놓은 촛불 2개 중 하나를 끄고 정중히 할머니를 맞았다.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할머니는 겸연쩍게 말했다. “선생님께 기부금을 부탁하려고 왔다”며 “거리에 세워진 학교가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조금만 도와달라”고 간곡히 말했다. 그러자 머레이는 돕겠다는 대답과 함께 5만달러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선뜻 거액을 기부하겠다는 말에 할머니는 깜짝 놀라며 “조금 전에 촛불 하나를 끄는 것을 보고 모금이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거액을 기부하겠다니 기쁘고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머레이가 대답했다. “독서를 할 땐 촛불 2개가 필요하지만 대화할 때는 촛불 하나면 충분하지요. 이처럼 절약해왔기 때문에 돈을 기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질은 가치 있게 사용될 때 빛난다. 우리말에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나도 어려서부터 혼자 한 걸음 한 걸음씩 산꼭대기에 올라 내려다 보면 어떻게 내가 이 높은 산을 올라왔는지 감탄에 감탄을 하곤 했다.

그야말로 ‘개미 금탑(金塔) 모으듯’ 나는 단 한 푼도 낭비하지 않고 큰 돈은 아니지만 작게나마 항상 내가 쓰고 싶을 때 쓸 수가 있었다. 딸들이 영국 맨체스타에 있는 음악기숙학교 다닐 때 애들 보러 가서 주머니에 있는 돈 다 털어주고 밤늦게 서너 시간 차를 몰고 돌아오면서도 휴게소에서 차 한 잔 사 마실 돈도 없었고, 매주 영국 각지로 출장을 다니면서 식대로 나오는 돈으로 식당에서 밥을 사먹지 않고 하루 세 끼를 집에서 싸갖고 간 샌드위치로 떼웠으며, 미국에 와서 가발 가게 하나 하면서 아파트 방 한 칸 얻지 않고 가게 뒤 헛간에다 야전 침대 하나 놓고 지내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언제나 백만장자 부럽지 않을 정도로 부족함을 모르고 꿈도 못 꾸던 수많은 일들을 하고 싶은 대로 해오면서 나도 내 외손자 일라이자의 탄성 ‘이게 삶이야!’를 날이면 날마다 시시각각으로 내지르곤 한다.

<이태상(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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