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

2015-11-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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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한때 유튜브에서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로 불리던 여성이 있다.
26살의 리지 벨라스케스는 키 157센티미터, 몸무게 26Kg으로 지방이 붙지 않아 앙상한 뼈가 걸어 다니는듯한 몸피를 지녔다. 게다가 한쪽 눈은 실명했다. 선청성 희소병 환자인 그녀는 조로증과 함께 음식을 섭취해도 전혀 살이 찌지 않는 이른바 거미손 증후군을 앓고 있다. 이 여성은 지난달 28일 미국 의회를 찾아 상•하원 의원들을 상대로 미국 최초로 연방 차원의 ‘학교 왕따 방지법’의 입법화 필요성을 호소했다.

TV 뉴스에 나온 벨라스케스의 얼굴은 똑바로 보기 민망할 정도로 흉했다. 아마 사람들은 아무도 곁에 가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학교, 동네, 수퍼, 극장 그녀가 가는 모든 장소에서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수군거림, 놀림을 받았을 것이고 그때마다 가슴 속 깊이 숱한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벨라스케스는 다른 아이들이 욕하고 쳐다보고 손가락으로 가리켰지만 유치원에 간 첫날 괴롭힘을 당하면서야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를 인식했다고 한다. 그녀의 부모에게는 아이가 모자라도, 아무리 못생겨도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이였기에 헌신적인 사랑아래 벨라스케스는 정상으로 자랐던 것이다.

벨라스케스는 17세 되던 해 유튜브에 뜬 자신의 영상과 ‘괴물이다’, ‘불에 타 죽으라’는 등의 악성 댓글을 보고 괴롭고 자학했었지만 곧 떨치고 일어났다. 텍사스 주립대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그녀는 자신만의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용감한 사람’을 만들어 올렸다. 이번에 국회에서 시사회를 가지며 학교 왕따 방지법의 입법화를 역설한 그녀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잘생기고 못생기고, 예쁘고 밉고 그런 외모의 잣대는 무엇일까?
허락도 받지 않고 남몰래 벨라스케스를 촬영하여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린 그 누군가, 그가 세계에서 가장 못나고 비겁한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마음이다.

미국은 다양한 문화와 출신 배경, 인종으로 인해 학교 왕따 발생 가능성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크다. 실제로 학교 왕따로 인한 자살사고와 총기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총격사건, 2012년 오이코스 대학 총격사건 등등 미국내 한인이 일으킨 대표적인 총기난사 사건 주요원인이 집단 따돌림, 왕따 때문이라고 한다. 각 주마다 학교에 ‘반 왕따법’ 지침을 내려 실시하고 있다고는 하나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고 있다.

지난 9월4일 론 김 뉴욕주 하원의원은 건강보험회사 등과 함께 ‘왕따방지 캠페인’으로 플러싱 지역 초등학생 800여명에게 가방을 무료 배부하기도 했다.

지난 2012년 오바마 행정부는 집단 괴롭힘(왕따) 등의 학교 폭력을 뿌리뽑기 위해 왕따 처벌법을 제정코자 했고 대통령이 직접 어린이채널 카툰 네트워크 왕따 방지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기도 했었다. 그때 오바마는 “성장기의 통과의례가 아니다. 분명히 잘못된 것이고 파괴적인 행위다. 우리 모두 왕따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국회에서는 왕따 방지법이 잠자고 있다. 반대사유가 인권 침해요소까지 담긴 강력한 처벌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버드 보건대학원의 (1982~2014)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총기난사 사건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자주 일어나고 있는 문제라는 것이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자신의 쓴 경험을 오픈하며 수많은 왕따들을 위한 입법운동에 앞장 선 벨라스케스, ‘왕따 방지’를 명시한 미 최초의 연방법이 통과 되는 날, 벨라스케스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예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가 웃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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