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감사하는 마음

2015-11-0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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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부르크스 씨는 미국인의 만족도를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직업에 만족하는 자가 84%, 가정적 수입에 만족을 표명한 자가 76%, 앞으로 5 년 동안 현재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가 62%, 그리고 전반적으로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이 65%로서 미국인의 만족도는 세계 수위라고 한다. 개인의 만족도는 다분히 경제생활에 기인하고 있다. 확실히 미국인은 많이 소유하고 풍요를 느끼며 산다.

그러나 많이 가지는 것이 곧 행복은 아니다. 헬렌 켈러가 “내가 사흘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면, 첫날은 친절했던 사람들과 갓 난 아기의 얼굴들을, 둘째 날은 박물관 미술관에 가서 인류가 이룩한 발전의 발자취와 놀라운 창조를 음미하고, 마지막 날은 떠오르는 태양과 숲의 새소리, 바다의 웅장함과 파도소리를 듣겠다.”고 하였는데 이것들은 우리가 돈을 안 들여도 즉시 얻을 수 있는 것들이고 사실 날마다 보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불행 감을 가진다면 그것은 나에게 무엇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의 심성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나는 살면 살수록 세상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해돋이의 기적, 아기의 탄생, 계절 따라 바뀌는 색깔의 조화, 아이들의 웃음소리, 과학자들의 놀라운 발명, 예술가들의 위대한 창작, 착한 사람들의 숨은 봉사, 자유를 향한 우람찬 함성, 불치병과 싸우는 의학자들. 흐뭇하고 감사한 일을 찾아보면 하늘의 별처럼 우주에 꽉 찼다. 정말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이다.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살면 행복해진다.

교만과 아집과 욕심의 좁은 상자에서 뛰쳐나오는 것이 급선무이다. 화의 분화구에서, 질투의 용광로에서, 경쟁의 수렁에서 헤어 나와 아이 같이 맑고 단순한 마음을 가지고 가족에게 이웃에게 조물주에게 감사하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면 행복이 찾아온다.

버넷 기프슨의 명저 ‘행복한 하루’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행운의 손바닥에 얼마나 많이 쥐게 되었느냐 하는 것은 그대의 행복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대의 마음속에 감사한 생각이 없으면 그대는 파 멸의 노를 젓고 있는 것이다. 다른 공부보다 먼저 감사의 예술을 터득하라. 그 때 비로소 행복을 찾을 것이다.” 불평도 만족도 습관이 된다. 불평의 눈으로 보면 사방에 불평거리가 널려있다. 그러나 감사의 눈으로 보면 고마운 일과 고마운 사람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다.

나의 자작시 한 편: “오천 번의 그 맑은 새벽/ 오천 개이 이슬에 반짝이는 꽃송이들/ 황금빛으로 물든 오천 번의 황혼/ 달빛에 춤추는 허드슨 강/ 답답함을 식혀준 맨하탄의 강바람/ 고향을 전해주는 억만의 별들/ 세월 속에 불을 붙이는 파크웨이의 단풍/ 사랑과 우정과 따뜻한 눈동자들/ 역사를 맑게 하려는 그 눈물과 피들/ 끝에서 끝까지 아름다움이 줄을 지은 가을.”

올려보는 불만보다 내려 보는 자비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욕망의 우물을 파며 인생을 마치지 말고 사랑하며 또 사랑하며 매듭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 주머니를 채우려고 애쓰기보다 감사가 가득한 주머니를 준비하는 것이 바른 길이 아닐까. 사람이 감사를 모를 때 그는 독사의 이빨을 가지게 된다. 남도 다치고 스스로도 무너뜨린다.

이미 받은 복을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 내일의 행복은 기약되지 않는다. 마음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위로 받으려는 생각에서 위로해주는 자세로, 인정받으려는 심사에서 인정해 주는 태도로, 사랑받으려는 빈자(貧者)의 근성에서 사랑해 주는 부자의 마음으로 마음의 자세를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불평에는 행복이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11월은 감사의 달, 감사한 마음을 되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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