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0년 전 그녀들

2015-10-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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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간의 이번 한국방문 여행 의 하이라이트는 돌아오기 직전 맨 마지막 일정의 고등학교 홈 커 밍 행사였다. 드디어 올해 우리 기가 졸업한지 30년이 되어 홈 커밍 을 하는데 특별 연주까지 하게 돼 서 더욱 두근대는 마음이었다.

“어머, 너 정말 그대로구나 하나 도 안 변했어!” “무슨 말이야, 너는 예전보다 더 예뻐졌구만 호호호 지지배 네가 더 예뻐 넌 진짜 그대 로다.“ 마치 여고생처럼 까르륵 꺅 꺅 서로 얼싸안고 반가워했다. 음 악, 미술, 무용을 전공하며 멋진 미 래를 꿈꾸던 17살 소녀들이 30년 의 세월이 비껴간 모습으로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서로가 정말 하 나도 안 변했다고, 더 예뻐졌는데 늙지 않았다고 굳게 믿으며. 사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는 정 말로 모두 그때 그대로였다. 예술 고등학교는 그래도 명색이 남녀공학이라 동창회장도 사업하 는 남학생이었다.


여러 친구가 애써 준 덕분에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이루어진 행사에는 은사님들이 초대 되었고 회장 지인인 이홍렬 씨 사 회로 축하 연주, 화가 친구들의 작 품 전시, 옛날 사진 감상 그리고 넘 쳐났던 경품까지 완벽 그 자체였다.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빛났던 건 그리운 친구들의 얼굴이었다. 모두의 얼굴에 과거 모습이 겹쳐 보 이며 다시 17살로 돌아간 것 같이 반갑고 또 반가웠다.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30년을 오락가락하던 강렬하고 짧았던 만남을 아쉬워하 며 이틀 후 집으로 돌아왔다. 가을이 되자 반가운 손님들이 미국을 방문했다. 한국에서 친구들 이 각자의 사정으로 동부를 방문 했고 뉴저지. 뉴욕. 버지니아에서 홈 커밍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던 친구들까지 모두 모여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듯한 감격적인 만남이 또 이루어졌다.

겨우 흥분을 가라 앉힌 우리는 찬찬히 서로 들여다보 며 비로소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참 동안 서로의 삶을 나누다 보니 어느덧 얼굴에서 우리들의 부모가 보이기 시작한다. 엄마가 하고 싶은 거 못하게 한다고 속상해했던 천방지축 우리가 아이들을 잔소리 하며 기르는 것이 사랑이었다는 걸 깨달았고 자녀를 올바르게 교 육하려고 내리는 수많은 결단들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지 알게 되어 감사했다. 이렇게 우리의 역사적인 만남은 부모님을 향한 한없는 감사 로 끝을 맺었다.

올해도 아이는 학교로 떠났다. 섭섭하고 허전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우리 엄마도 나 시집보내고 그랬겠지. 나 미국 보내고는 더 그러셨겠지. 30년 전 소녀였던 나도 이제는… 엄마다.

배경미 (오보이스트/ 릿지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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