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고란

2015-10-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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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문 부고란을 빼지 않고 읽는다. 딴 일이 있어 신문을 덮었다가도 그것은 신문 읽는 일상의 미완성이 되기 때문에 옆으로 밀어 놓았다가도 꼭 다시 찾아 읽는다.

매일 한 뭉치씩 배달되어 오는 갖가지 신문들 가운데 뉴욕 타임스 뒷면에 실리는 부고란은 마치 복잡 한 맨하탄의 한 가운데에 자리잡 은 센트럴 팍같이 세상 속에 일 어나는 무수한 사건들에 오염당한 머리가 갑자기 정적이 깃들은 숲속 에 찾아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하튼 부고란은 내가 꼼꼼히 챙 겨 읽는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내가 아는 사람의(물론 그는 나를 모르 지만) 살아온 길, 어떻게 성공했는 가, 어떻게 살면서 세상에 기여했는 가가 그대로 들어있다. 비교적 상세하게 많은 지면을 차 지하는 사람들로부터 죽은 것을 공고하는 이름 석자만 오르는 사람들 까지 죽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신 문 한 구석에 남는다.


그 중에는 이미 긴 세월을 살아 온 내가 어린 시절부터 그 명성을 들어온 사람의 부고를 보게 되어 놀라기도 한다. 이 사람이 나와 같 은 세대에 살던 사람인가 하는 놀 라움이다. 따져보면 내 십대에 이미 유명인사가 된 사람들 가운데에는 나와의 연령차가 몇 년 안 되는 이 도 있다. 사실 나는 부고란에서 참 많은 사람들을 아니, 세상에 존재했었 던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부고란 을 본 통계로 보면 뉴욕타임스 1,2 면 정도에 사진과 함께 많은 지면 을 차지하고 떠나가는 사람들 가운 데는 나이로 보아서 젊다 느껴지는 사람은 거의가 에이즈 합병증이나 사고 혹은 자살이 사망원인이다. 그 리고 그 에이즈 합병증으로 간, 특히 예술가 계통은 남겨진 가족이 동거자 혹은 부모형제뿐이다.

부고란을 펴면 그래도 젊고 예 쁜 모습의 사진으로 먼저 눈이 간 다. 그 젊고 예쁜 모습의 주인공이 아흔살에 세상을 떠난 노인인 것을 확인하면서 당당한 노인의 사진이 실린 부고란은 어쩐지 정직해 보이 기도 하지만 그래도 예쁜 사진이 좋다. 무슨 무슨 주의자는 아니지만 아 무리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 도 동성연애의 흔적으로 일생을 마 감한 인물에게는 연민이 없다.

한때 뭇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감동 시켰던 유명인들 중에는 에이즈로 죽은 예술가들이 특히 많다. 그들의 예술 혼은 오래전 앙상하고 추하게 변해 세상을 떠난 한 미남배우의 말년의 모습에 겹쳐져 타버린 잿더미 같은 허상으로 남는다. 때로 사고로 세상을 떠난 젊은 이들의 사진과 함께 실리는 부고는 나를 슬프게 한다.

언젠가는 열여 섯 소녀가 차사고로 부고란에 실린 일주일후 열네살 된 동생이 또 차 사고로 부고란에 오른 것을 보았다. 나는 그들이 가엽고 또 그 부모 가 가여워 억장이 무너져 온 종일 그 아이들의 생각에 우울하고 슬펐다. 그 애들을 졸지에 잃고 그 부모 가 어떻게 견딜 것인가. 세상에 온 인간은 반드시 떠나야 하지만 그 떠남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엄청난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면 역시 부고란은 슬픔을 나누는 광장일지 도 모른다.

윤혜영
(병원근무/ 티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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