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투리토프시스 누트리쿨라

2015-10-24 (토)
크게 작게
김명욱<객원논설위원>

영원을 바라보는 바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소망 중 하나다. 종교의 발생도 여기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진시황제는 자신이 가진 권세가 하늘을 찌르고 수많은 궁녀들에 둘러싸인 아방궁생활이 너무 좋아 불로초를 찾게 했다. 불로초를 먹고 영원히 늙지 않고 아방궁에서 살아가려고 그랬을 거다.

불로초는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그는 신하들과 불로초를 찾아 나선 길목에서 나이 50에 객사하고 말았다. 그의 죽음의 원인은 수은중독이란 설도 있다. 당시 수은은 불사의 약이라고 전해졌다고 한다. 이렇듯 사람은 다른 동물처럼 죽음을 자연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투리토프시스 누트리쿨라. 영어명은 turritopsis nutricula이다. 불로장생의 생명체로 알려져 학계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에 있다. 모든 생명이 자연사를 맞이하지만 이 생명체만큼은 죽지 않고 계속 생명을 연장시켜나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해파리 과의 이 생명체는 늙으면 언제든지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갈 수가 있기에 그렇다.

과학자들은 이형분화(trans differentiation)의 원리로 설명한다. 이형분화란 하나의 세포가 또 다른 세포로의 변형을 뜻한다. 도마뱀이 꼬리를 잘린 다음에 그 자리에 다시 꼬리가 나오는 현상이 대표적인 이형분화의 예다. 투리토프시스 누트리쿨라는 태아 상태에서 성장을 하고 다시 태아로 돌아간다. 그러니 영원한 생명의 반복이다.

생물학적 수명이 존재하지 않는 이 해파리는 원래 아메리카 캐리비안 바다에서 발견됐는데 그 수가 늘어나 전 세계 바다에서 발견되고 있다. 소리 소문 없이 바다를 장악해 나가고 있는 불로장생의 생명체다. 허나 이 생명체도 지구가 끝 날을 맞이하는 날엔 어떻게 될까. 지구와 함께 사라져야 하는 생명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 번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온 친구가 다시 연락을 해 왔다. 내시경을 찍었는데 이상한 물체가 발견돼 조직을 떼어냈다고. 그리고 방사선진료(MRI)인 씨티(CT)도 찍고 조직검사와 씨티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한다고 했다. 과연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데 결론이 안 난다고 고민한다.

그 친구, 검사결과에 관계없이 수술은 불가피하다고 담당의사가 말했다며 걱정이 앞선단다. 그리고 반드시 생명보험에 가입하라고 한다. 자신은 다행하게도 금액은 많지 않지만 생명보험에 가입돼 있어 만에 하나 불행한 일을 당하더라도 보험금이 나옴으로 그것이 남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고 했다. 안심!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그 친구, 무엇이 안심일까. 가족걱정은 꽤 되나보다. 한 번 태어난 생명은 투리토프시스 누트리쿨라가 아닌 이상 반드시 죽는다.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이 이르나 늦느냐의 문제뿐이다. 그러나 죽음을 감지하지 못하고 사는 게 사람 아니던가. 친구처럼 몸에 이상이 생겨 죽음을 생각하는 그런 사람 외에는.

죽음을 앞둔 사람에겐 무엇이 필요할까. 돈과 명예. 아니다. 죽은 후의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의 대책이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요즘 죽음을 바라볼 수 있는 90이 넘어서도 돈과 세력 때문에 가족전쟁을 치루고 있는 롯데의 신격호회장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조용히 죽음을 맞이할 만한 나이인데.

사람, 언젠가는 죽는다. 진시황제처럼 나이 50에 죽느냐, 아님 100세에 죽느냐만 다르지. 영원의 시간과 공간 안에선 50이나 100이나 거기서 거기다. 투리토프시스 누트리쿨라처럼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다면 죽음이란 명제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한 마음이 아닐까. 친구의 검사결과가 좋게 나오기만을 기대해본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