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꿈인가 생시인가

2015-10-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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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2박3일간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금강산 면회소에서 열렸다. 남측 상봉신청자 96가족 389명, 북측 상봉신청자 76가족 141명은 60년 이상을 기다려 12시간 만났고 다시 헤어졌다.

신혼 6개월만에 헤어진 북측의 남편 오인세(83) 할아버지를 65년만에 만난 이순규(85)할머니는 헤어지면서 “지하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북측 리홍종(88)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돌아가서도 기억하고 싶다는 딸 이정숙(68)의 요청에 ‘애수의 소야곡’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북측 리한식(87)할아버지는 흰종이에 연필로 65년 전 어머니와 함께 살던 경북 예천의 고향집을 그렀는데 초가집 기둥, 담벼락, 마루, 댓돌까지 생생하게 그려 동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버스의 열린 유리창 사이로 안쪽의 북측 가족과 바깥의 남측 가족들이 손에 손을 부여잡고 우는 것을 보니 슬프면서도 화가 났다. “내 가족을 우리 집에 데려 가겠다는데 왜 안되느냐?”는 한 남측 할아버지의 절규가 귀에 들린다.

이산가족 생사확인, 서신교환 및 화상상봉, 교향 방문, 상봉정례화, 근본적 해결 방안을 모색 중이나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 남북 이산가족 문제가 해결되어야 통일로 가는 길이 더 빨라질 것이다. 통일은 요원하다. 우방국의 적극적 지원도 없고 무엇보다 한국민들의 통일염원이 저하되어 있다.

독일은 1989년 통일되면서 더 큰 혼란이 왔지만 동독 실업자 350만명에게 서독인과 똑같이 실직수당, 연금, 의료보험 등을 지불함으로써 불만과 극단적 행동을 잠재웠다. 지금 유럽의 리더격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2012년 취임한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 모두가 동독 출신이다.

결국은 남북한도 통일이 되어야 한다. 통일이 되어 이산가족들이 만나면 처음엔 어색하다가 기쁘다가 서로 너무 달라서 후회도 되는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이 사정없이 몰아쳐 올 것이다. 사회적 혼란뿐 아니라 남측에서는 북한의 낙후된 지역에 경제개발 투자를 하고 높은 세금도 감내하는 인내와 각오가 있어야 한다.

2015 ‘뉴욕한인영화제’(KAFFNY) 개막작인 김대실 감독의 다큐멘터리 ‘사람들이 하늘이다’에서 북한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김감독은 두차례 북한을 방문하여 놀이공원과 미술관에 온 학생들, 젊은 청년, 노인들에게 무작정 마이크를 들이대며 남한에 대해, 미국에 대한 심정을 이야기 하라고 한다. 그들의 미소는 소박했고 부모형제,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은 남이나 북이나 똑같다.

안부 앵글의 저서 ‘얘들아 학교가자’, ‘세계의 초등학교’(조선북스)를 보면 예루살렘 언덕에 있는 평화학교가 나온다. 이 학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나란히 앉아 히브리어와 아랍어 두가지로 수업을 받는다. 운동장에서 같이 뛰어놀며 토론시간에는 서로 무엇이 다르고 왜 다른지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끊임없이 분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학교 아이들은 유대인, 아랍인이 아닌 그냥 어린이일뿐.


한국에는 휴전선에 가장 가까운 민간인 거주지역으로 파주시 대성동이 있다. 북한측의 최남단 마을은 기정동 마을로 주로 농장원들이 거주한다. 이 두 마을에 각각 남한아이와 북한아이가 함께 공부하고 놀 수 있는 평화학교를 만들면 어떨까. 대성동과 기정동 마을 거주민들이 농사지어 유복하게 살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고 세금, 학비도 없다면 점차 인구가 늘 것이다.

이곳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오면 대학은 국비유학생으로 서울, 평양, 미국, 중국, 어디든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시켜주는 것이다. 이 작은, 찬찬한 걸음들이 언젠가는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통합의 길로 가지 않을까.

이번 2박3일의 여행을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이 죄 없는 국민들의 순결한 눈물을 누가 닦아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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