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아있는 그루터기(Remnant)

2015-10-1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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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지난 주 월요일은 ‘컬럼버스 데이(Columbus Day)’로 휴일을 즐겼다. 미국이 이 날을 국경일로 정하고 온 백성이 기념하는 것은 물론 이 날이 새 땅 아메리카가 발견된 날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컬럼버스가 바하마 열도에 도착한 것은 1492년 10월 12일이었다. 지금 미국은 정치와 경제면에서 세계의 선도자(先導者)가 되어있지만 불과 500년 전만 해도 세계는 이 지구상에 미국이라는 거대한 땅이 존재하는 것 자체도 모르고 있었다.

컬럼버스는 네 번의 항해를 통하여 중미 베네수엘라와 쿠바 및 포토리코 등을 발견하는데 물론 가장 힘들었던 것은 첫 항해였다. 컬럼버스는 “만일 선원들의 투표에 의하여 항해를 결정하였다면 아마도 대서양을 3분의 1도 건너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선원들은 날마다 돌아가자고 주장하였고 컬럼버스 선장을 위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컬럼버스는 계속하여 <서쪽으로 전진!> 명령을 내렸다.


이런 것을 고집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컬럼버스는 신념을 가지고 전진하였으며 선원들은 의심과 두려움으로 돌아갈 ‘안전의 길’을 원하였던 것이다. 성공 실패의 갈림길이 여기에 있다. 신념과 희망으로 전진하는 자는 성취의 열매를 거두고 소심하고 의심에 차있는 자는 실패의 쓴 잔을 마신다.

컬럼버스가 1502년 스페인 국왕 페르도난드와 왕비 이사벨라 앞으로 보낸 보고서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내가 신천지를 발견한 것은 나의 수학의 힘이나 항해술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믿음 때문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사람이 신념이 있으면 소망이 생기고 희망이 있으면 용감해진다. 그래서 성취도 있고 성공도 있다.

컬럼버스의 선원들은 10월 11일 밤에도 폭동에 가까운 데모를 벌이고 배를 돌리자고 소란을 피웠으나 10월 12일 새벽이 밝았을 때 안개 속에 육지가 드러났다. 지금의 바하마 열도이다.

소망을 가진 자는 참을 수 있고 희망이 없는 자는 조급하고 신경질을 부린다. 희망이란 두 글자보다 더 위대한 말은 없다. 그것은 인간에게 활력을 주고 미래를 밝게 볼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컬럼버스가 날마다 쓴 항해일지는 언제나 이런 말로 맺어졌다. “우리는 오늘도 서쪽을 향하여 전진하였다.”

컬럼버스는 페르도난드 국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남아있는 그루터기’(Remnant)라고 믿으며 그런 신념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루터기의 신앙은 구약성경의 중요한 사상이다. 그것은 환난의 역사 속에서도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씨를 하나님이 준비하고 보존하여 두신다는 사상이다. 그리고 내가 곧 하나님이 남겨두신 희망의 그루터기라고 믿는 것이 기독교의 인생관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인이 가장 선호하였던 TV 연속극은 ‘길리건의 섬’(Gilligan’s Island) ‘나는 루시를 사랑해’(I love Lucy) ‘가족의 모든 것‘(All in the family) 등의 상황희극(Situation comedy)인데 그 공통점은 폭력 마약 강간 살인을 취급하지 않았고 한결같이 ‘인간의 희망‘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이다.

‘길리건의 섬‘의 작가 슈월츠 씨(뉴욕 브롱스 거주)는 700편의 TV 및 영화 대본을 쓴 거장인데 “인기 몰이로 대중과 광고주를 만족시키고 세상 풍조에 야합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 작가는 미국사회의 장래를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비전(Vision)을 갖는다는 것은 행복을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다. 가장 가난한 인간은 주머니에 돈이 없는 자가 아니라 가슴에 꿈이 없는 자이다. 우리의 미주 이민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인가? 불과 50년 동안에 100만의 한국인이 바다를 건너는 민족 대이동을 감행하였는데 그 엄청난 역사적인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곰곰이 생각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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