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류 최대의 불치병!’

2015-10-19 (월)
크게 작게
연창흠(논설위원)

어떤 인간도 피해갈 수 없는 질병. 홀로 싸워서 퇴치해야 하는 질병. 인간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질병. 치료약이 없는 질병. 결코 완치되지 않는 질병. 바로 감기가 그런 질병이다.

감기는 땀을 흘려 옷이 흠뻑 젖었을 때 찾아온다. 찬바람을 장시간 쐬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피로한 몸에 찬 음식을 먹었을 때도 그렇다. 감기 바이러스는 체온이 떨어질 때 인체로 쉽게 침입한다.


감기는 사람의 면역세포와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다. 이들이 몸속에서 싸울 때 생기는 증상은 열이 나는 것이다. 때론 콧물이 흐르고 재채기도 한다. 목 아픈 기침을 하며 온몸에 권태감을 느끼기도 한다. 가을이 깊어가는 요즘처럼 일교차가 심할 때 사람들의 면역력은 떨어지기 십상이다. 바이러스라는 이런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심술을 부린다. 감기는 환절기 불청객인 셈이다.

많은 사람들은 감기를 가볍게 여긴다. 불치병이라 하면 믿지 못한다. 감기증상은 급성으로 나타나 2-3일 지속되다 1주일 전후하여 낫는다. 일주일 정도 편하게 휴식을 취하면 사람의 잠재된 면역기능에 의해 감기는 물러난다. 바이러스와 면역세포의 싸움은 대부분 사람이 이기기 때문이다.

감기는 바이러스성 감염이다. 리노바이러스가 가장 흔한 감기 바이러스다. 불행한 것은 수많은 감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약이 없는 것이다. 감기약은 증상이나 통증을 완화해줄 뿐이다. 치료약은 아니다. 약을 복용하거나 그냥 견디나 감기 낫기는 매 한가지다.

‘감기는 치료하면 일주일, 내버려두면 7일’이라는 우스갯소리도 그런 뜻이다. 결국 감기약은 플라시보(위약효과)일 뿐인 셈이다. 감기를 인류최대의 불치병이라고 하는 이유다.

감기약을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딱 부러진 기준은 없다. 이는 감기약이 치료제가 아니라 증상을 완화하는 약이란 말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약 인심은 사나워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약을 먹는다면 면역력이 약해져 쉽게 감기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감기 증세가 오래 가고 점점 심해지면 반드시 진찰을 받아야 한다. 합병증이 생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감기약보다 항생제를 찾는 한인들에게 있다. 항생제를 복용해야만 감기가 낫는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항생제는 세균이 원인이 되는 감염에 쓰이는 약물이다. 바이러스가 원인인 감기에는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

의학자들은 감기로 인한 2차 감염에는 항생제가 필요할 수 있지만 그러한 경우는 드물다고 한결같은 목소리를 낸다. 2차 감염을 우려해 예방차원으로 항생제를 처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단지, 오랜 감기로 인한 합병증이 생겼을 때 세균 검사를 통해 항생제를 투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 하여 약과 음식을 하나로 보아왔다. 음식은 약물보다 인체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서양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좋은 식사로 건강을 유지하고 좋은 식사가 그대의 약이 되리라”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우리 속담에도 ‘감기는 밥상머리에 내려앉는다.’는 말이 있다. 감기에 걸려 앓다가도 밥상을 받으면 앓은 사람 같지 않게 잘 먹을 때를 일컫는 말이다.

밥만 잘 먹으면 감기 정도는 절로 물러간다는 뜻으로 ‘감기는 밥상머리에서 물러간다’는 속담이 쓰이기도 한다. 이와 같이 동서양 모두에서 건강과 식사는 떼어 놓기 힘든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

가을이 깊어간다. 하루하루 일교차는 점점 심해진다. 여기저기서 ‘콜록콜록’하는 소리도 잦아든다. 환절기 불청객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약을 찾기보다는 제철음식을 잘 먹는 게 중요하다. 감기뿐 아니라 계절의 변화에 건강을 지키는 데는 잘 먹는 것이 최고의 보약이기 때문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