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무와 그림자’

2015-10-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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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상(전 언론인)

다음은 시인 김남조(1927- )의 시 ‘나무와 그림자’다.
나무와 나무그림자/ 나무는 그림자를 굽어보고/ 그림자는 나무를 올려다본다/ 밤이 되어도/ 비가 와도/ 그림자 거기 있다/ 나무는 안다.

이 시에서 말했듯이 자연 속의 ‘나무는 그림자를 굽어보고 그림자는 나무를 올려다본다.’ 그런데 불가사의하게도 인간세계에선 ‘그림자는 나무를 굽어보고 나무는 그림자를 올려다본다.’


지난 9월27일 CNN방송을 비롯한 미 언론에 따르면 밥 브래디(펜실베니아) 하원의원이 9월24일 교황의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이 끝난 직후 장내가 어수선한 틈을 타 재빠르게 연단으로 올라가 물 컵을 집어 들었다고 한다.

브래디 의원은 이어 물 컵을 조심스럽게 들고 자신의 방으로 가서 아내, 친구, 참모 등과 함께 조금씩 나눠 마셨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이 물을 마시는 사진은 물론, 아내 등에게 직접 물을 먹여주는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교황이 만진 물건은 모두 축복받은 것”이라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면서 교황의 물 컵을 펜실베니아 자택에 잘 보관해 가보로 삼고 이를 손자들에게 대대손손 물려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을 뿌리 뽑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 필라델피아를 방문 중 그는 9월27일 성 마르틴 성당에서 가진 주교들과의 만남에서 “성직자들의 어린이 성추행이 더는 비밀에 부쳐져서는 안 된다”면서 “어린이들이 성추행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 하겠다”고 다짐했다.

가톨릭 신자는 물론 아니고 조직화된 어떤 종교도 갖고 있지 않으며 소위 일컬어 ‘불가지론자(agnostic)’나 ‘성상파괴주의자 (iconoclast)’ 또는 ‘개인주의자(libertarian)’ 나 ‘청개구리식’ 엇박자의 ‘반골(contrarian)’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를 나도 개인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좋아하고 존경하면서 동시에 늙은 어릿광대를 보듯 심한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일련의 메시지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신(神)보다 ‘사람을 보라’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해 감히 한마디 하자면 신(神(덧말:신))이나 자연의 일부인 사람보다도 자연- 그 자체-을 보라는 것이다.
자식을 낳아 키우는 어버이로서의 사람 ‘인(人)’ 자(字)의 인부(人父)’나 지아비 ‘인부(人夫)’ 도 못해보고서 어찌 하나님 ‘신(神)’ 자(字)와 아비 ‘부(父)’ 자(字)의 ‘신부(神父)’라 불릴 수 있을까.

그리고 어찌 자연의 섭리와 생리를 어겨가면서 부자연스럽게 ‘성(聖)스러운 성직자(聖職者)’가 아동 성추행하는 ‘성직자(性職者)’가 될 수밖엔 없단 말인가.

더 냉철히 생각해보면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나 사람답게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너무도 당연지사 아닌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전무후무하고 유일무이한 존재들이라면 다른 그 누구를 따르거나 흉내 내지 말고, 너는 네 식으로 나는 내 식으로 자가충족, 자아실현 해가면서 자신의 삶을 더할 수 없이 행복하게 살아볼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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