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거울 보기

2015-10-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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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니 뭔가 새로운 분위기로 나를 변신시켜 보고 싶다. 생동적이고 희망 적인 봄과는 달리 뭔가 원숙함과 성취감 이 느껴지는 분위기를 그려본다. 가을의 향기를 거리의 쇼우윈도에 비춰보며 스스 로 만족감에 젖어본다.

서양 화가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거울을 보는 여성의 이미지들 속에 투사된 피그말리온적인 욕망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자신 이 만든 대리석 여인상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래서 조각상을 사람으로 만들어 달 라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마침내 대리석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하여, 둘은 행복 하게 살았다.

이처럼 피그말리온의 이야기 에서 보듯이 서양의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무수한 여인의 이미지들과 사랑하고 미워하고 때로는 숭배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여성상으로 손꼽히는 비너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미인 이라는 단 어인데 그래서 무수한 신들과 영웅들을 연인으로 거느렸던 소문난 바람둥이로 알 려져 있기도 하다.


사실 나의 어린시절 기억 속 비너스는 어느 속옷 회사의 상표로만 알았는데 나 중에 비너스가 미의 여신이란 사실을 알 고 나서는 여신이라는 비너스에 대해 신이 라기 보다는 그 속옷회사의 상품을 착용 하면 나 역시 미의 여신처럼 아름다워질 것같은 흥분되는 묘한 기분을 느꼈었다.

이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열광하 고 사랑했던 비너스의 아름다움은 비너 스 그녀자신도 예외 없이 자신의 모습에 홀딱 반했었다. 사실 자기 자신이 미의 상징인데 자신의 아름다움을 거울에 비춰보며 스스로 즐기지 않겠는가? 그래서인지 비너스는 여러종류의 비너스, 즉 요염하게 누워있거나 잠들어 있거나 갖가지 유혹하 는 포즈를 취한 비너스들과 더불어 하나 의 유형을 이룰 정도로 많이 다루어졌다.

19세기 영국의 대표적 화가인 번 존스 경의 작품 (1898)에는 삭막한 풍경 속에서 ‘최초의 거울’인 웅덩이 에 고인 물가에 모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여성들이 그려져 있다. 자연의 거울 속에서 그녀들이 유난스럽게 몰입하여 바라보는 것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 혹적인 그녀들 자신이다. 마네의 작품 (1877)에 그려진 에밀 졸라의 주인공인 나나 처럼 자신의 모습에 반한 여성들에게 거울은 여성들만 의 세계였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수 록 남성들의 세계와는 점점 멀어져만 갔 다.

거울 속의 아름다운 자신과 사랑에 빠지는 일이야말로 짝사랑에 의한 비극을 비껴가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여성에게 있어 거울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만하지 않을까?

고수정(큐레이터/ 포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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