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짜 딴따라, 참 예술가

2015-10-1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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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지난 10일 뉴왁 프루덴셜 센터로 빅뱅을 보러갔다. 아니 지드래곤(본명 권지용, GD)을 보러갔다. 32가에서 뉴저지 트랜짓 티켓을 살 때부터 기나긴 줄을 서더니 뉴왁역에 내리면서 극장 위치를 찾을 것도 없이 수많은 젊은이들이 떼 지어 몰려가는 길을 따라 가니 프루덴셜 극장이었다.

극장 앞은 30분 전인데도 인산인해였다. 입구에서 철저한 가방 검사로 카메라, 아이패드, 비디오기기, 먹을 물조차 모두 반입 금지시키는데 그 줄이 언제 끝날지 몰랐다.


극장 바깥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쾅쾅 울리는 ‘판타스틱 베이비’, ‘베드보이’ 등등 빅뱅의 노래를 따라 소리 지르고 춤추는 젊은 애들 속에서 몇 번이나 “내가 미쳤지,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데를 내가 왜 와.” 속으로 한탄 하면서도 “그래도 안보면 후회할거야.”했다.
빅뱅을 안 것은 6년 전 딸의 대학 기숙사 방에 붙어있던 커다란 빅뱅 포스터를 보고서였다. 룸메이트인 중국아이가 빅뱅의 광팬이라 했다. YG엔터테인먼트 소속 5명의 남성 그룹으로 2006년 데뷔한 빅뱅은 힙합 음악, 랩, 요즘은 전자댄스 음악 등으로 한국의 트렌드를 리드하고 있다.

이날, 6층 꼭대기까지 가득 메운 관객들은 한인 반, 타인종 반으로 가수들이 등장하기 전 대형스크린에 상영되는 영상물만 보여도 악악 소리부터 질렀다. 그야말로 한류의 대물결인 것이, 이들도 우리처럼 4개월 전에 꽤 비싼 티켓을 구매했을 것이다.

빅뱅의 두 번째 월드투어인 뉴저지 공연은 화려한 퍼포먼스, 위압적인 무대장치, 굉음과 불꽃, 가수들의 폭발적인 에너지, 관객의 뜨거운 열기로 정신없이 두 시간이 지났고 극장 밖을 나서니 한동안 귀가 멍멍했다.

지드래곤, 탑, 태양, 대성, 승리 개개인이 솔로가수와 댄서로 뛰어났고 그룹의 리더인 지드래곤은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무대에서 단 한시도 쉬지 않고 춤추면서 표정, 손가락, 발가락 하나까지 매순간 소홀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무대에서 사라지는 순간까지 열심히, 넘치는 끼를 발산하며 관객을 만족시켰다.

그는 마르고 키도 작고 어찌 보면 왜소한 체구지만 신체적 결점을 강점으로 변모시켰다. 여성 옷도 자연스레 소화시켜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하는 그는 젠더와 장르를 뛰어넘는 환상을 보여준다. 퇴폐적인가, 반항아인가, 아니 그냥 10대네 하는 경계를 뛰어넘는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보여주는 그다.

가끔 그가 나오는 한국 TV연예프로그램을 보면 언제 어디서나, 눈빛, 표정, 손가락 하나에도 연예인 포스가 잡혀있다. 잠시 장소를 바꾸었다 하면 어느새 헤어스타일, 옷차림이 달라지는 것은 기본, 진흙탕에 구르면서도 항상 밝게 웃는 팬 서비스를 잊지 않는다.

지난여름 서울시립미술관은 지디와 한국•외국 현대미술가들의 협업전시회 ‘피스마이너스원: 무대를 넘어서’를 열 정도로 그는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접점에 서있다. 순수미술이란 장르가 거대한 자본주의에 귀속되면서 예술의 상품화가 이뤄졌고 이 시기에 팝아트를 탄생시킨 미국작가 앤디 워홀(1928~1987)이 있다.

광고계에 있던 앤디워홀은 미디어 매체를 이용해 자신을 적극적으로 마케팅 했는데 그는 대중의 심리를 읽었다. 캠벨 수프 캔이나 코카콜라 병 등 대량생산품의 실물을 그리다가 실크 스크린으로 바꾸어 작품자체를 대량생산했다. 작품을 대중에게 유행처럼 빨리 전달했고 새로운 것을 찾게 만들었다. 그는 아방가르드 영화, 레코드 프로듀서로도 활동했다.

소비자 혹은 관객과 함께 고민하고 마음을 나누는데 충실하다는 점에서 앤디 워홀과 지디는 닮았다. 무대에서 정말 잘 노는 가수, 혼신의 힘을 다해 관객과 소통하는 지디, 대중의 즐거움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그는 진짜 딴따라고 참 예술가다. 난 이 날 공연을 엄청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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