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두운 그림자를 지나고

2015-10-10 (토)
크게 작게

▶ -종군위안부를 위하여-

경 카발로(은행원/ 웨스트우드)

그의 방,
작은 책상위를 기웃거리며
“깨어진 침묵
(Silence broken by Dai Sil Kim- Gibson)
과 만나는 어느 아침날
살을 에이는 적막과 흙빛의 고요를 지나
피멍든 음성으로 외치는 여인들.
낮은 몸 드리워 긴 시간위를 기며
버려진 뼈마디에
설움은 역사위로 흘러넘치고
한으로의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피빛어린 치마폭 위에 선 여인들이여,
그의 책 너머로 기웃거리는 그 얼굴이 섧다.

그의 방에,
슬그머니 고개돌린 네 목덜미는 유난히 흰데
무디어진 가슴 쓸어내리며
나는 아니라 했던가,
난, 거기 없었다 했던가,
듬성이는 흰머리 몰래 감추며
내 이름은 아니라 했던가.

나는 아니요,
너도 아니고,
그저 더럽고 힘없는 시대에 살았던
그 어떤 여인네들이라 하는가,
그러나, 내 손가락 마디마디
내 심장 줄기마다
고함치며 솟구쳐 오르는 ‘우리’ …
아, 난 참말 이 시대의 ‘우리’ 사람이던가…
나도 그 등굽은 여인네들의 무리였거늘,
꾸역꾸역 치미는 숨찬 분노의 언덕을 지나
이빠진 얼굴로 한바탕 웃어제킨 이름모를 할머니
그새 성큼 우리 곁에 서 있는가,
어렴풋이 밝아오는 새벽빛 한웅큼 쥐고.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