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려서 목격한 엄마 사랑

2015-10-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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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계신 엄마는 조금씩 기억력을 잃어 가신다. 내가 읽고 있는 책에, 치매와 치매가 아닌 상태를 구별하는 방법이 나와 있는데 단순히 한 말과 들은 말을 잊어서 묻고 또 묻는 것은 기억력이 쇠퇴해가는 것이고 헛것을 보거나 성격이 변하는 것은 치매이기 쉽다는 말로 다소 위안을 받으면서도 엄마가 이야기하시는 것을 잊을까보아 이틀에 한번 꼴로 전화해서 한 시간 이상의 대화를 하는 것이 맏딸이며 고명딸인 나의 일과가 되었다.

오늘은 맨 처음 엄마사랑을 처음으로 깊이 깨달은 이야기를 해드려
야겠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가 아니라 그 겨울은 추웠고 특히 그 날은참으로 추웠다. 영하 20도를 밑돌아 몇 십 년만의 추위 운운하던 기억이 난다.국민학교 4학년이었던 것 같다. 시골의 친할아버지의 환갑이라고 해서 충남의 양화라는 곳을 향해 갔다가 환갑이 지나고 서울
로 돌아오기 위해서 역을 향해 가고 있었나보다.

합승버스인지 승합버스(지금의 미니밴 같은 것)인지 탔는데 다른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없고 뒤 칸에 동생 둘과 엄마 내가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차 뒤편의 유리창이 깨져 모진 눈발이 바람을 타고 차안으
로 들이치고 있었다. 가뜩이나 추운 날이어서 눈발을 몰고 오는 바람은 견디기 어려웠다.


지금도 그렇지만 체격이 빈약했던 나는 정말 턱이 덜덜 떨리도록 추웠다.그렇게 추운데 갑자기 엄마가 코트를 벗으셨다. 나는 정말 놀랐다.
“옷을 다 입고도 추운데 엄마는 왜 옷을 벗으실까...?” 엄마의 이상한 행동에 놀라서 나는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는 두 남동생을 한꺼번에 싸서 그코트로 꽁꽁 여며주시고 단추를 채우셨다. 엄마는 스웨터 바람이 되셨다. 처음에 엄마가 왜 옷을 벗으시는지 어린 나는 미처 헤아릴 수가 없었기에 가슴이 아프도록 뭉클했다.

그 바람 속을 스웨터만 입고 가시던 엄마. 엄마가 너무 추울 것이 마음이 쓰여서 나는 더 이상 내가 추운 것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때 깨달은 엄마의 희생은 정말 그 뒤로도 끝없이 이어졌다. 깜빡하고 제 날짜에 맞춰 카드도 못 보낸 딸은 이 이야기로 엄마에게 감사와 위안을 드려야겠다.

정정숙(전직 공립학교 교사/ 에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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