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인 정신이 필요하다

2015-10-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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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5일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연구자 3인 중 한명이 오무라 사토시 기타사토 대학 특별명예교수 일본인이다. 다음날인 6일에는 가지타 다카아키 일본 도쿄대 우주선 연구소장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그는 “선배인 도쓰카가 생존했다면 수상했을 것이다. 혼자 할 수 있는 연구가 아니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스승 시바 마사토시 도쿄대 특별영예교수때부터 이어진 한 연구를 선후배 관계인 제자들이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켰다. 그야말로 오랫동안, 3대에 걸쳐 뜸들인 것이다.


이틀 연속 노벨상 소식에 들떴던 일본은 이제 노벨상 수상자가 24명(미국적 취득자 2명 포함)이나 된다. 우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받은 노벨평화상 달랑 하나인데, 최근들어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이라고, 선진강국에 들어설 시점이라고 떠들던 것이 무색해진다.

노벨문학상도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 오엔 겐자부로(1994), 두 명이 이미 받았고 올해는 벨라루스 출신 여성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수상했지만 바로 뒤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언제라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인 수상후보자로 고은 시인이 한국 언론에서만 매년 오르고 있을 뿐이다.

이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일본은 1854년 미국과의 조약으로 개방문호를 열자마자 근대화에 박차를 가해 수많은 인재들을 국비로 해외유학 시켰다. 이들이 돌아와 일본 기초과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이러한 기본 실력을 바탕으로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자신의 맡은 바 일을 묵묵히, 비가 오나 바람 오나 2대, 3대를 이어 내려오며 한가지 일에 매진하다보니 기술이 증진되고 창의력도 개발된 것이다. 이에는 자신의 일에 대한 소신과, 자부심, 열정, 세월에 연연하지 않는 의지가 따랐다.

이렇게 일본의 장인(丈人) 정신이 오늘날 노벨상 수상이라는 성과를 내었다는 의견에 공감한다.또한 동경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엘리트 사원으로 승승장구하던 청년이 부친이 사망하자 사표를 내고 조그만 장어덮밥집 요리사가 된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5대째 내려온 가업이었다고 한다. 4대째의 우동집, 수백년을 이어온 대장장이업 등 일본에 유독 장인정신이 투철한 소규모 기업이 많다.

우리가 장인정신이 희박한 데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조선은 1876년 일본과 체결한 강화도조약으로 문호개방과 대외통상이 시작되면서 급격한 변화가 밀려왔다. 이때부터 너도나도 신분을 떠나 벼락출세하고 싶은 꿈과 거친 직업에 귀천이 있다는 유교적 사고로 인해 손에 물 묻히고 거친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어서 성공하고자 ‘빨리 빨리’가 습관이 되었고 결과물이 늦게 나오는 꼼꼼한 기초작업은 답답했다. 공장제 대량생산에 현혹됐고 그러자니 속도가 목숨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이민사회도 마찬가지다. ‘한인 1세업체 매물 쏟아진다’ (2015년 9월 10일자 한국일보 C1면)는 보도에 의하면 30년이상 청과상이나 생선가게를 해온 1세들의 가게를 자녀들 모두가 물려받기를 거절해 다른 한인 혹은 다른 인종에게 가게가 넘어갔다. 청과상, 수산업 등의 가업을 이어받는 2세는 5%도 안된다고 한다. 많은 이민1세 자신이 고된 노동의 현장에 자식만은 들어오지 않고 변호사, 의사, 회계사, 연방공무원 등등 주류사회 전문직으로 진출하기를 바라는 현실이다.

하지만 예술이나 기술, 학문, 저술 어느 것이든 돈과 명예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장인정신이 필요하다. 고려청자를 만들어낸 도예뿐만 아니라 찾아보면 장인정신이 들어간 문화와 기술이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있다.

주위에 ‘될성싶은 떡잎’이 있으면 장기적으로, 때론 3~4대를 이어 장학금이나 연구비를 후원하는 것이 노벨상에 목마른 우리의 할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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