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은둔형 외톨이

2015-10-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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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우리 주변에 사람의 생명을 파리만큼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눈만 뜨면 매일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흉악범들이 그들이다. 때문에 우리는 갈수록 메말라지는 인간의 정서를 만회 할 수 있는 여유나 미소 등을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인물 하면 우선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떠올리게 된다.

한평생 사람답게 살고 간 링컨은 생전에 이런 말을 하였다. “내가 죽으면 내가 아는 이들이 나를 두고 이 말을 꼭 해주었으면 한다. 나는 언제나 꽃이 자랄 만한 곳에는 엉겅퀴를 뽑고 꽃을 심었다는 사실을...” 그렇다. 그는 아무리 각박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짓밟고 괴롭히고자 했던 주위의 많은 사람들도 모두 그들의 마음을 끝까지 보듬어주고 즐겁게 만들고 행복하게 해준 링컨의 아름답고 선한 심성에 매료됐다.


우리는 지금 질식할 것 같은 무거운 공기 속에서 가까스로 숨 쉬면서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웃음이나 유머 같은 것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른 현실이다. 경제가 침체되다보니 사람들은 스트레스 투성이고, 당장이라도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은 분위기다. 툭하면 일어나는 총기난사 사건도 그의 일환이 아닐까 싶다.

총격사건의 대부분은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 분노를 억제하지 못해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번 오리건주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10명이 죽고 7명이 부상당한 사건도 종교가 이유라고는 하지만 용의자가 외톨이 상태에서 저지른 사건으로 밝혀졌다. 그가 사건전 SNS에 “많이 죽일수록 더 유명해진다”는 글을 남긴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제 총기난사 사건의 근절은 아무리 부르짖어도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미국의 태생적인 총기 문화에다 총기규제를 반대하는 전미총기협회(NRA)의 막강한 로비력 때문이다. 총기규제 강화법안은 공화당의 반대로 소모적인 공방만 계속되고 있다. 그로 인해 샌디훅 초등학교와,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흑인교회, 버지니아 방송사에서 발생한 총격사건 등 총기난사 사건은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내 총기사건은 이처럼 매일 한건 씩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제 총기규제 강화는 물론, 하시라도 분노감을 표출할 수 있는 주변의 은둔형 외톨이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될 것 같다. 그들의 총부리가 언제 어디서고 우리 자신과 주변에도 겨누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두운 곳에서 끔찍한 생각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에게 필요한 것은 얼음장같이 차고 냉랭한 마음을 녹일 수 있는 ‘사랑’이다.

미국인 교육전문가 존 스킬스 박사가 서로 다른 두 상황의 고아들을 관찰한 연구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한 그룹은 고아원에 그대로, 또 한 그룹은 고아를 한명씩 여성에게 보내 보살피도록 해서 나타난 결과를 분석한 것인데, 이중 고아원에 있던 아이들은 거의 다 문제아가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반면 개별로 보살펴진 아이들은 모두 고등학교를 마치고 결혼했으며 정부보조금 없이 독립하였다.

이들의 독립변수는 “누군가가 나를 보아주었다” “누군가가 나를 보듬어주었다” “누군가가 나를 보살펴 주었다”였다. 단지 누군가에 의해 사랑을 받았고 같이 놀아졌으며 개개인이 독립적으로 취급되었다는 것이 전부였다. 분노감과 적개심이 가득한 은둔형 외톨이들에게 일찌기 이런 사회적 보살핌이 있었다면 그와 같이 잔혹한 짓을 저질렀을까. 억울하게 희생당한 이들의 비보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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