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 가을이다!’

2015-10-05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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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하늘. 하얀 뭉게구름. 푸른 달빛. 뒹구는 낙엽. 노란 은행잎. 코스모스, 오색으로 물드는 푸른 잎, 황금들판….

하늘을 올려본다. 바람에 말을 걸어본다. 나무에 손짓한다. 들풀에게 이름을 묻는다. 산들바람에 두 뺨을 살포시 어루만진다. 하늘, 바람. 햇살, 자연 등이 향기롭다. 가을은 향기의 계절이다.

물감을 색칠하는 나무들. 곱게 치장한 여인의 모습이다. 아름다워 감탄사를 연발한다. 황홀감에 빠진다. 코스모스의 하늘거림. 청초한 들국화의 뽐냄. 고상하고 숭고하다. 가을은 사계절 중 멋이 있는 낭만의 계절이다.
만나고 싶어지는 사람.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는 사람. 멋진 추억을 만들어 가는 사람. 숫한 사연을 담아 상상의 나래를 펴는 사람. 가을은 낭만에 젖고 추억에 빠져드는 욕망의 계절이다.


봄부터 농부는 열매를 바라보며 땀을 흘린다. 농부에게 열매는 기쁨이고 보람이다. 삶의 존재 의미다. 열매에는 생명이 있다. 그 씨앗 속엔 내일의 희망이 있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내 잘 가꾸면 풍성해 진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단풍은 모두의 마음을 온통 붉고 노랗게 칠한다. 그리고 정든 가지를 떠난다. 봄이 설렘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다. 가을은 봄의 설렘과 여름의 열정을 뒤로 한다. 흘러간 날들의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깊은 밤 나뭇잎은 지고 시간은 가을바람에 실려 추억을 잉태한다. 그래서 가슴 속에 잿빛 추억을 담고 있는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다.

사계절을 여성에 비유한 표현이 있다. “봄은 처녀요. 여름은 어머니. 가을은 미망인. 겨울은 계모”라는 폴란드 속담이다.

이 속담을 풀어보면 봄은 처녀처럼 설레며 부드럽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여름은 어머니 숨결처럼 따뜻하고 정열적이며 겨울은 차갑고 쌀쌀맞고 혹독하다는 의미다. 그리고 가을은 허전하고 쓸쓸한 미망인에 비유했다. 가을은 남편 잃은 여인네의 그리움이 물씬 풍기는 그런 그리움의 계절인 셈이다.

벼는 익어 고개를 숙인다. 단풍은 화려한 마무리를 연출한다. 비움과 떠남을 묵묵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지도 고민 한다. 그러면서 혹독한 겨울이 오기 전에 갈무리하는 법도 알아 간다. 낮아지는 법을 터득하게 하는 가을은 낮은 곳을 알려주는 계절이기도 하다.

구름이 바람의 유혹에 하늘을 배회한다. 하늘을 벗 삼아 거닐기에 좋은 날이다. 그런 날에는 낙엽을 밟으며 오솔길을 걷고 싶어진다. 소풍도 가고 싶은 기분이다. 시를 읊고 노래를 불러야 할 것 같다. 삶을 깊이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가을이 시인과, 사색의 계절인가 보다.

가을 달빛은 유난히 맑고 푸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 좋은 가을. 밤하늘에 뜬 달을 보며 가족 사랑을 새기자. 그리운 사람도 그리워하자. 때로는 희로애락을 안주삼아 친한 벗들과 술잔도 기울여 보자.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좋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품은 마음속의 달은 태양보다 찬란하지 않겠는가?

계절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봄 오고 여름, 여름 가고 가을, 가을 지나 겨울이다. 물론 겨울 속엔 봄이 숨어 있다. 뉴욕은 어떤가. 여름과 겨울은 구분이 된다. 하지만 봄과 가을은 언제 찾아왔다가 지나갔는가 싶게 사라져 버린다. 가을은 더욱 빨리 지나가고 티 안 나는 계절이다. 그래서 가을을 그냥 보내기 십상이다. 그러니 그저 흘러 보낼 것이 아니라 성큼 다가온 가을의 제 멋을 만끽해야 할 때이다.

푸른 하늘 한 쪽에 풍성한 구름이 걸려 있다. 아, 가을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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