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의 문턱에서

2015-09-30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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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한줌의 재로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동안 바르고 인간답게 살아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인간의 길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지금 우리의 마음은 삶의 피곤함에 찌들어 매우 강퍅해 보인다. 이런 상태에서 누구를 돕고 사랑하며 살 수 있겠는가. 남을 돕고 사랑하려면 우선 자신부터 사랑 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겠다.

9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지나고 벌써 아침저녁으로 한기가 느껴지는 가을이다. 가을을 흔히 ‘풍요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마음은 대부분 비어있고 공허하기만 하다. 이 공백을 매우기 위해서 우리는 또 다시 후반기 삶을 새롭게 다잡아야 할 시점이다. 새로운 삶의 시작이 없으면 삶은 무료해지고, 인생 자체도 무의미하고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친 영혼을 무엇으로 회복할 것인가. 누가 내 텅 빈 마음을 풍성하게 채워줄 것인가. 싱그러운 신록의 숲을 찾아가 아무런 생각 없이 빈 마음으로 침묵하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마음이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도 바쁜 생활 탓에 쉬운 일은 아니다.


가톨릭의 관상 수도자였던 토마스 머튼 신부는 말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열렬히 찾고 있지만 침묵속에 머무는 자만이 그것을 찾아낼 수 있다. 말이 많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가 경탄할 만한 것을 말한다 할지라도 그의 내부는 비어있다.”고 하였다.

내 인생을 한 땀 한 땀 쌓아올릴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다. 자신의 영혼을 맑게 하기 위해 매주 월요일을 침묵의 날로 지켰던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먼저 생각하라, 그런 다음에 말하라. ‘이제 그만’이라는 소리를 듣기 전에 그쳐라. 사람이 짐승보다 높은 것은 그럴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가을, 이 가을에 자연이 속삭이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놀라운 자연의 질서, 자연의 맑고 신선한 공기... 나의 피곤한 심신을 달래고 허전한 마음을 채우려면 자연에서 들리는 침묵의 소리에 심취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힘든 역경을 딛고 승리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자신을 신뢰하고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나인 것이 그냥 좋다고 생각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절제해야 하고 엄숙해야 하고 정직해야 하고 친절해야 하고... 그래야만 괜찮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 잣대에 따라 나를 감시하고 억압하고 그것이 안 될 때는 부끄러워하고 자책하는 것이 잘사는 인생이라 여겨왔다. 대체 나는 누구인가, 그동안 몇 점짜리 인생으로 살아왔나, 또 앞으로 남은 인생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인생의 추수를 앞두고 이 가을에 한번쯤 생각해볼 점이다.

이집트인의 교훈중에 사람이 죽어 신에게 불려가면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결정하는 질문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이고, 또 하나는 ‘남에게 기쁨을 주었는가’이다.

스스로 기쁘고 남을 기쁘게 만드는 방법이 무엇일까? 최대한 삶을 보람있게 그리고 주위에 보탬이 되도록 인간답게, 즉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배려, 사랑과 용서, 그리고 이해, 포용 등을 아무런 조건없이 남에게 베풀면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풍요의 가을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명쾌한 답이 아닐까.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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