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난을 구제한 것

2015-09-29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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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경훈 / 논설위원

신약에 나오는 사복음서 중 마태와 마가, 누가는 ‘공관 복음서’라 불린다. ‘공관’이란 ‘함께 본다’는 뜻인데 이 복음서들은 겹치는 부분이 많아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성서학자들은 이 세 복음서 중 마가가 가장 오래 됐고 마태와 누가는 이를 바탕으로 다른 소스를 추가해 후대에 쓰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다른 소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Q’다. 독일말로 ‘소스’(Quelle)를 뜻하는 단어의 앞머리를 따온 이 문서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들려준 가르침을 모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마태와 누가 모두 Q를 널리 인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가 가난한 자에 관한 부분이다. 누가 복음에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라”고 돼 있다. 반면 마태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임이라”라고 적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나라’로, ‘너희’가 ‘그들의’로 바뀌었지만 진짜 중요한 변화는 ‘가난한 자’가 ‘마음이 가난한 자’로 바뀐 점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누가의 버전이 더 원 가르침에 충실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가난한 자’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지만 ‘마음이 가난한 자’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고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거기다 예수가 설교를 한 대상도, 예수의 제자들도 압도적으로 가난한 계층 출신이었다. 이들에게 쉽고 분명한 말을 놔두고 어렵게 말을 돌려 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기독교도 수가 늘어나고 귀족과 부유층에도 신자가 생기면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는 걸림돌이 됐다. 이들로서는 부자는 천국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이 거북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이들을 포용하는데 큰 힘이 됐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주말 78년의 그의 일생에서 첫 미국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연방 상하원 합동 연설, 유엔 연설, 그리고 100만 명이 모인 필라델피아 미사 집전을 통해 그는 역대 교황 중 최고의 인기를 확인했다. 환경 보호와 이민자 권익 옹호, 성범죄 규탄과 반성 등 많은 발언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미국인들의 가슴에 와 닿은 것은 가난한 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였을 것이다.

유대의 이름 없는 목수가 시작한 기독교가 전 세계 최대 종교로 성장한 원동력이 약자에 대한 배려에 있었음은 물론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서로 돕는 공동체를 만들었고 여기 끌린 소외 계층이 몰려들면서 세계 종교로 발돋움했다. 약자를 돕는 것은 단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의무다. 문제는 기독교 출현 후 지난 2000년간 세상에 나온 수많은 사상과 이념과 제도 중 가난한 사람을 가장 많이 구제한 것이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정답은 자유 시장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경제 체제다.

예수 출현 이후 1750년 산업 혁명 이전까지 세계 인구는 3~5억 선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18세기 후반부터 200년 동안 3배가 늘고 그 후로는 15년마다 10억씩 증가해 현재 70억 명이 넘은 것이다. 갑자기 사람들이 아이를 많이 낳아서가 아니다. 산업혁명과 시장 경제가 창출한 식량과 부와 기술이 가난과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던 사람들을 살려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본주의는 예나 지금이나 지식인들의 비판의 대상이다. 자본주의는 부의 불평등한 분배라는 문제를 안고 있지만 가난 퇴치도, 환경 보호도, 시장 경제를 통한 부의 창출 없이는 불가능하다. 노동자의 극심한 빈곤과 최악의 환경오염은 영국과 미국이 아니라 구소련과 동구권 등 공산권에서 일어났다. 반면 빈곤을 없애고 평등을 실현하겠다던 공산주의는 ‘빈곤의 평등’만을 실현한 채 사망했음에도 아직도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교황은 어째서 1,000만 명이 넘는 밀입국자가 자신이 “악마의 똥”이라고 부른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미국에 건너와 살고 있고 지금도 수많은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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