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물 연구 메모

2015-09-28 (월) 허병렬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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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교사직에 있던 사람의 책상 서랍에는 귀여운 선물이 가득하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내게도 어린이들이 때때로 준 선물이 많이 있다. 작은 수첩, 거울, 펜, 손톱깎이, 카드 등… 그들의 선택은 다양하고 거기에 어린 마음이 함께 숨 쉰다.

선물이란 무엇일까? 다른 사람에게 선사하는 물건이다. 꼭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꼭 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너무 클 때는 상대방에게 마음의 부담을 주게 되어서 알맞는 것을 선택하기가 힘들게 된다.

한동안 필자는 목탄으로 석고의 대체 윤곽을 그리는 소묘 연습에 열중하였다. 그 때가 마침 물건이 귀하여서 목탄 구하느라 고생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목탄 한 상자를 보내주신 어떤 분이 계셨다. 또 1963년에는 한국내 C신문에 본인의 교사 수기가 직접 그린 삽화와 함께 56회 연재되었다.


그런데 그 연재가 끝나자마자 어떤 분이 이 모든 것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서 보내 주셨다. 그 분은 누구일까? 그 책은 현재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으며, 본인의 재산 목록 제1호임에 틀림이 없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아름답고 정성이 담긴 선물을 하고 싶다.

오늘은 또하나의 기억되는 날이다. 먼 옛날에 맡았던 학생이 특색있는 ‘시집’을 보내왔다. 이름하여 ‘우주정거장의 별다방’이다. 지난 번에는 수필집 ‘내 안의 용연향’이었는데 이번에는 시집을 냈다. 또한 이 시집의 특색은, 그 책의 장정까지 본인이 디자인한 것이다. 그러니까 책의 모든 것을 본인의 취향에 맞췄다. 그 시집을 몇 차례 거듭 읽으면서 독특한 시어의 아름다움에 몸과 마음이 젖었다.

문학작품은 작가의 분신이다. 하나의 작품이 아닌 본인 자체이다. 특색있고 아름다운 시들을 읽고 있으면, 그 옛날 우리 반에서 영롱한 두눈을 반짝이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 친구가 ‘어떻게 너를 기억하겠어?’라는 말을 그녀에게 하였다지만, 특징이 있던 그 학생은 뚜렷하게 알 수 있다. 가냘픈 몸매에 두 눈이 유난히 반짝이고, 목소리가 맑았다. 그 시집을 받은 날 더없이 행복하였다. 선물 중의 으뜸은 그가 만든 것이다.

동물들이 의논을 하였다. ‘우리 다같이 한 가지씩 선물을 마련하여서 서로 바꾸기로 하자.’ 정해진 날 그들이 숲속 연못가에 모였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제각기 준비한 선문을 내놓고 그 주위를 빙빙 돌다가, 피리소리를 듣고 앞에 있는 선물주머니를 열었다.

제각기 선물을 받았지만,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친구에게 주려고 제각기 마련한 선물을 되찾고 나서야 큰 웃음소리가 퍼졌다. 결국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제가 가진 셈이다. 그러나 그들은 좋은 기회를 잃었다. 모처럼 새로운 물건과 만남의 기회를 잃었으니까.

‘선생님, 누구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데 돈이 없어요.’ 한 어린이가 이렇게 말하자 여기 저기서 ‘정말이에요’하고 소리쳤다. 그들의 아이디어가 이어졌다. 그림, 노래, 청소, 심부름, 동생보기, 책상 정리, 신장 정리, 설거지… 등을 할 수 있지 않아? 하고.

결국 그들의 의견은 물건을 직접 만들어 드리는 것이 선물답다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어린이들은 제각기 그림을 그려서 빈 상자 위에 붙였다. 그 보물상자를 좋아하는 사람의 생일선물로 준비한 것이다.

누가 이 행운을 누릴까? 그러면 어린이들 자신은 선물을 받고 싶지 않는 것인지 알고 싶다. 그들은 다 같이 합창을 하였다. ‘받고 싶어요오~’ 그래서 물었다. ‘무엇을~?’ 장난감, 책, 인형, 로봇, 그림물감…제각기 떠들다가 잠잠해졌다. 한 어린이가 소리쳤다. ‘누구나 다 받고 싶은 것이 있을까?’

다른 목소리가 외친다. ‘물론 있지!’ 이번에도 나머지 어린이 모두가 합창을 한다. 내가 물었다. ‘그게 무엇이지?” 또다시 어린이들이 합창을 한다. ‘아빠, 엄마가 안아주는 것이지요.’ 다 함께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런데 이것은 쉽고도 어려운 일인지.. 절약하시지 말고, 넉넉히 주시기를.

<허병렬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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